세계적 명장이라도 완벽할 수는 없다. 혼자서 팀을 이끌 수도 없다. 감독으로서 부족한 부분을 능력 있는 코치들이 옆에서 보좌하며 완벽히 채워 넣었다. 감독과 코치의 시너지 효과가 클수록 팀은 강해졌다. 감독의 능력만큼이나 코치의 역량이 중요한 이유다.
감독과 코치의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준 대표적인 파트너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퇴)과 '지략가' 카를로스 케이로스 수석코치(현 이란 대표팀 감독)였다.
퍼거슨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면서 세계 최고의 명장으로 우뚝섰다. 케이로스 코치는 한국 팬들에게 악명 높은 이란 대표팀 감독으로 익숙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퍼거슨 감독의 절대 신뢰를 받던 오른팔이었고, 맨유 황금기를 만들어낸 뛰어난 '전술가'였다. 퍼거슨 감독과 케이로스 코치 케이로스 코치는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또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맨유의 수석코치로 퍼거슨 감독을 보좌했다. 케이로스 코치는 맨유 선발 명단과 전술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상대팀 맞춤형 전술을 구상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다.
그만큼 퍼거슨 감독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케이로스의 능력은 프리미어리그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으로 돌아왔다. 또 크리스티아노 호날두(현 레알 마드리드)를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퍼거슨 감독이 케이로스 코치를 맨유 감독 후계자로 생각할 정도였다.
한 해외축구 전문가는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 리오넬 메시를 가장 잘 봉쇄한 팀이 어디였는가? 내가 볼 땐 케이로스 감독의 이란이었다. 이란 수준의 팀이 90분 동안 메시를 봉쇄한 건 전술의 힘이다. 메시는 후반 추가시간 가까스로 1골을 넣을 수 있었다. 전술가 케이로스 전술이 만들어낸 효과다"고 설명했다.
퍼거슨 감독과 케이로스 코치 감독과 코치 영혼의 파트너로 대표되는 이들은 또 있다. 바로 조제 무리뉴 감독(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과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수석 코치(현 상하이 상강 감독)다.
무리뉴 감독이 포르투, 첼시, 인터밀란에서 수많은 영광을 품으며 세계적 명장 반열에 오를 때 옆에는 항상 빌라스 보아스 코치가 있었다. 빌라스 보아스 역시 빼어난 '지략가'였다.
그는 냉철한 분석 능력을 앞세워 무리뉴 감독의 전술 자문 역할을 수행했다. 무리뉴 감독이 이끌던 첼시의 황금기를 이끈 4-3-3 포메이션을 완성시킨 이도 빌라스 보아스라고 알려졌다.
첼시 감독 시절 무리뉴 감독은 "빌라스 보아스는 나의 눈과 귀다"라고 말할 정도로 믿음을 보였다.
무리뉴 감독과 빌라스 보아스 코치 그런데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에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만 있고 지략가가 없다.
카를로스 코치는 전술 코치가 아니다. 피지컬 코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차두리는 선수들과의 가교 역할을 하는 임무에 치중하고 있다. 그나마 전술가적 기질을 갖춘 신태용 코치가 U-20 대표팀으로 떠났고, 슈틸리케 감독은 설기현 코치의 손을 잡았다. 따라서 지략가적 역할을 할 이는 설 코치뿐이다.
하지만 설 코치는 아직 지도자로서 검증을 받은 인물이 아니다. 성균관대학교 감독 경험이 전부다. 어떤 프로팀, 대표팀 경력도 없다.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설 코치가 전술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당초 경험 많은 외국인 코치 선임을 노렸지만 무산됐고 대신 설 코치를 선택했다. 그 핵심적 이유가 "슈틸리케 감독이 지도자 경험이 많은 코치를 원하지 않는다"였다.
이는 곧 코치의 간섭 없이 독단적으로 하겠다는 의미다. 코치의 전술 조언은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말이다. 자신의 축구 철학과 전술에 양보는 없다고 공언하는 것과 같다. 어리고 경험이 없는 설 코치의 지략가적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세계적 명장들도 전술을 짤 때 코치와 상의하고 논의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린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자신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면 수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코치와의 이런 조율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독단적 모습과는 상반된다.
슈틸리케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이 매력적이라면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현재 슈틸리케 감독의 가장 큰 문제가 '무전술'이다.
따라서 지금 슈틸리케팀에 가장 필요한 건 '지략가'다. 슈틸리케 감독 전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전술가'다.
대한축구협회는 슈틸리케 감독을 재신임하고 싶다면 먼저 제대로 된 지략가를 영입해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과 이별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감독을 보좌할 새로운 전술가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