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정작 롯데를 일군 주인공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축하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 창업주임에도 불구하고 아들들의 경영권 다툼과 비리 경영에 얽히면서 씁쓸한 말년과 함께 불명예 퇴진의 길을 밟고 있다.
창립 50주년 행사에 신격호 불참
3일 롯데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서울 잠실 롯데호텔월드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송파구에 있는 롯데월드타워에서는 그랜드 오프닝 행사가 진행됐다.
창립 50주년 기념식에는 차남인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각사 대표이사 등 800여 명이, 롯데월드타워 개장식에는 신 회장과 롯데 임직원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수많은 롯데 관계자들 속에서 정작 주인공인 신 총괄회장의 자리는 없었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롯데쇼핑·호남석유화학 등을 잇달아 창업하거나 인수하면서 롯데를 재계 5위 그룹으로 키워온 주인공이다.
또 롯데월드타워는 한국의 랜드마크를 짓겠다는 신 총괄회장의 30년 숙원사업 중 하나다. 그러나 자신이 일궈온 사업이 첫 문을 여는 날 신 총괄회장은 함께 하지 못했다.
단지 차남인 신 회장의 창립 50주년 기념사와 롯데월드타워 개장식에서 각각 한 번씩만 언급됐다.
신 회장은 기념사에서 "창업주인 총괄회장님이 롯데제과를 설립한 이래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기업이 되고자 노력했다"고 말하며 아버지를 언급했다.
신 총괄회장이 그룹 내 굵직한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못하고, 신 회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 측에 버티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고령이라는 점 때문에 신 총괄회장은 현재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판정을 받고 법원으로부터 한정후견인 지정을 받은 상태다.
신동빈은 책임 떠넘기고, 신동주는 지분 챙기기 급급
롯데는 이날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신격호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신동빈의 뉴롯데'가 개막했다는 점을 대내외에 공식화했다.
물론 현재 95세로 고령인 신 총괄회장의 퇴진은 정해진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씁쓸하기만 하다.
롯데 비리와 관련해 두 아들들을 비롯한 가족들은 모두 신 총괄회장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자칫 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롯데 오너 일가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배임) 1차 공판에서 출석한 롯데일가의 친족들은 모두 비리 혐의에 대해 '신 총괄회장 지시'라고 주장했다.
신 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이 영화관 매점 문제와 관련해 수도권 매점은 서유미씨에게, 지방 매점은 신영자 이사장에게 나눠주라고 지시했다"며 '공짜 급여' 제공 혐의도 "신 총괄회장이 결정한 사항"이라고 아버지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신 이사장 측도 "영화관 매점 문제는 시작부터 종료까지 신 총괄회장의 의사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법정에 출석한 신 총괄회장은 이런 자식들을 꾸짓지 못했다. 오히려 오락가락하는 발언으로 '병든 노인'의 모습만 부각됐다.
당시 신 총괄회장은 "내가 여기에 왜 있느냐" "내가 100% 주식을 갖고 있는 회사인데 어떻게 나를 기소할 수 있느냐" 등의 발언을 하며 호통쳤다. 결국 신 총괄회장은 30분 만에 퇴정했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롯데쇼핑 주주총회에서는 대표이사에 재선임 되지 않으면서 46년 만에 등기이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신 총괄회장은 평생 일군 롯데 지분도 자식에게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3월 신 총괄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롯데제과 지분 6.8%와 롯데칠성음료 지분 1.3%에 대해 압류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