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우 롯데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무게감 있는 4번 타자가 포진하면서 상대 투수들이 앞뒤 타자들과 승부에도 압박을 받는 것 같다." 지난 2일 NC와 개막 3연전을 2승1패 우위로 마무리한 12-4 대승 직후였다. 이 경기에서 이대호는 4번 타자로 나섰고, 5번 최준석은 결승타 포함 3타수 2안타 3타점을 기록했다. 6번 강민호는 연타석홈런 포함, 3안타 4타점을 기록했다. 올 시즌 KBO 리그 첫 멀티홈런 기록이다.
이른바 '우산효과'. 존재감이 큰 타자 한 명이 앞뒤 타순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강민호는 "상대 배터리는 이대호 선배보다 나와 최준석 선배와 승부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에선 '라인업 프로텍션(Lineup Protection)'이라고 한다. 범위를 좁혀 강타자 앞 타순의 타자는 치기 좋은 공을 더 자주 보기 때문에 유리하다는 관념이다. 프로텍션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통계적으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당장 이대호 앞 타순인 3번 손아섭의 개막 3연전 타율은 0.091(11타수 1안타)이었다. 하지만 통계와는 별개로 많은 선수와 지도자들은 강타자가 다른 타자의 타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있다.
실재 여부를 떠나 팀에 긍정적인 믿음이 자리 잡는 건 좋은 일이다. 롯데는 과거 이런 경험이 있는 팀이다. 1999년에 입단한 펠릭스 호세는 롯데 사상 최고 외국인 선수로 꼽힌다. 그해 타율 0.327에 36홈런을 날렸다. 이해 1루수 마해영은 개인 통산 최고 타율(0.372)을 기록했고 전해보다 20개 많은 35홈런을 날렸다. 두 번째 시즌인 2001년에, 외야수 조경환은 타율(.303)과 홈런(26개)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래서 만들어진 신조어가 '호세효과'였다.
정작 이대호가 '호세효과'라는 단어를 싫어했다는 건 약간의 아이러니다. 호세가 5년 만에 롯데로 복귀한 2006년, 이대호는 풀타임 세 번째 시즌을 맞았다. 전해까지 이대호는 홈런은 칠 수 있지만 정교함이 떨어지는 타자였다. '미완의 대기'인 이대호가 '호세효과'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자존심이 강한 이대호는 "호세가 내 덕을 보게 하겠다"고 맞받았다. 2006년 이대호는 타율 0.336에 26홈런 88타점으로 첫 트리플크라운에 올랐다. 성적만 놓고 보면 3번 호세가 4번 이대호의 덕을 봤다고 해야 한다.
이대호도 동료 타자들의 덕을 볼 수 있다. 후속 라인에 무게감이 없다면 상대 배터리는 애써 이대호와 정면 승부를 하지 않을 것이다. 2007년이 그랬다. 이대호는 그해 개인 최다 볼넷(81개)를 기록했다. 5번 타자 적임자가 없었다. 33경기에 나선 강민호가 최다 출전 선수였다. 이대호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고의4구(25개)를 얻어 냈다. 출루율(0.453)은 커리어 하이였지만 2006년 이후 가장 적은 타점(87개)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3번 손아섭과 5번 최준석, 6번 강민호는 2007년 롯데 라인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타자들이다. 이대호도 "손아섭, 최준석, 강민호 등 워낙 좋은 타자가 많기 때문이 오히려 나와 정면 승부를 하려 할 것이다"며 믿음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출루'라고 말한다. 뒤 타순 타자들의 타점 능력을 믿는다는 것이다.
이대호 효과가 극대화되기 위해선 전제 조건이 있다. 앞 타선에서 타점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대호는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모두 타점왕에 오른 타자다. 메이저리그 시애틀 소속으로 뛴 지난해는 상대적으로 적은 317타석에 나서고도 팀 내 타점 6위를 기록했다.
조 감독은 4일 사직 넥센전까지 4경기 모두 1~3번을 전준우-앤디 번즈-손아섭으로 구성했다. 전준우는 초반 선전하고 있지만 지난해 병역을 마치고 돌아온 뒤 첫 풀타임 시즌이다. 번즈는 아직 타격 능력에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상체만으로 스윙을 하는 폼은 우려를 낳고 있다. 변화구 대처가 약점으로 지적된다.
중심타선의 선전도, 상위타선의 부진도 시즌 4경기로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상위타선이 더 많은 출루에 성공한다면 4번 타자 이대호가 펼친 우산은 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