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3일부터 11일까지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아시안컵 예선 B조 경기를 개최했다. 폐쇄적인 북한이 AFC 주관의 국제대회를 개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과 함께 B조에 배정된 한국은 평양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고, 자연스럽게 국내 취재진들에게도 김일성경기장이 공개됐다. 또 대표팀의 훈련장으로 5.1경기장(5월 1일 경기장·능라도경기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 '성지' 김일성경기장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북한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경기장이다. 또 정치적으로도 북한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김일성경기장은 개선문 옆에 위치하고 있다. 개선문은 8.15 광복을 맞아 김일성이 북한에서 처음 연설했던 장소를 기념한 건축물이다. 1982년 60m 남짓한 높이로 완공됐다. 개선문 완공에 맞춰 경기장 이름도 평양공설운동장 대신 김일성경기장으로 개명됐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 초상화가 경기장 외부 중앙 상단에 걸려 있어 상징성을 자랑한다.
이곳에서 지난 7일 한국의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연주됐다. 외신들이 '역사적인 경기'라 고 보도한 이유다. 태극낭자들은 북한의 성지라 불리는 곳에서 혈투를 펼치며 값진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강호 북한과 비기면서 한국은 3승1무를 기록, 북한을 넘고 조 1위를 차지해 아시안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김일성경기장은 북한 남자대표팀이 2011년11월 열린 일본과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경기장으로 국내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북한은 일본을 상대로 예상외의 우세한 경기를 펼친 끝에 1-0 승리를 거뒀다. 당시 소수의 일본원정응원단은 경기장을 가득 메운 북한팬들의 기세에 눌려 별다른 함성조차 내지르지 못했고, 일본 대표팀 역시 무기력한 경기 끝에 패배를 당했다.
남북전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하지만 윤덕여팀은 북한의 압도적 목소리를 극복하고 무승부를 챙겼다.
북한 응원단은 경기시작 2시간 이전부터 경기장 옆에 위치한 개선문 광장 주위로 몰려 들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북한 관중들이 조직적인 응원과 함께 윤덕여팀에 적대적인 분위기를 뿜어냈다. 4만2500명의 북한 관중들은 한국의 공격시에 일방적인 야유를 쏟아냈다.
또 금색 종이나팔과 은색 짝짝이를 쉼없이 두들기며 커다란 소음을 만들었다. "우리조국 이겨라" 같은 구호도 외쳤다. 경기 초반 골키퍼 김정미(33·현대제철)가 페널티킥을 선방하는 과정에서 북한 선수와 충돌 뒤 양팀 선수단의 신경전이 펼쳐졌을 때는 관중석에서도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반면 남북전 이외의 경기에선 웃음이 경기장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별다른 상황이 아니어도 관중들은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평소 오락거리가 적은 북한 관중들은 축구장에서의 작은 장면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며 집중했다. 지난 5일 북한-홍콩전에 이어 열렸던 한국-인도전에는 2500명의 관중들이 그대로 자리에 남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 '아시아 최대규모' 5.1경기장
북한축구의 또 다른 심장은 '5월 1일 경기장'이다.
여자대표팀이 지난 6일 훈련을 소화한 5.1경기장은 북한이 자랑하는 건축물 중 하나다.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규모 만으로는 세계 최대 수준을 자랑한다. 대동강 능라도에 위치한 이 경기장은 건축에 들어가면서 노동자의 날을 강조하라는 김일성의 지시로 5월 1일 경기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1989년 5월 1일 세계청년학생축전 행사를 치르면서 개장됐다.
이 경기장은 독특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 불시착한 낙하산 모양으로 설계됐다. 경기장 관중석을 16개의 아치 모형이 덮고 있고 필드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의 높이는 61m에 달한다. 한국 취재진을 맞이한 경기장 안내원은 "진도 8에도 견딜 수 있는 내진 설계가 되어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또한 경기장 내부에 수영장과 레슬링장, 배드민턴장 등 각종 체육시설이 자리잡았다. 규모가 큰 경기장 답게 스탠드 아래쪽 경기장 내부에는 큰 통로와 함께 도핑실, 토론회실, 워밍업실 등 여러 회의 공간이 있다. 통로 벽면에는 2013년 서울에서 열렸던 동아시안컵 당시 북한 여자대표팀 우승 장면 등 북한의 기념적인 스포츠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경기장 내부 본부석 스탠드 위쪽에는 상징적 건축물에 빠지지 않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있다.
5.1경기장은 1990년 남북통일축구가 열렸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여자대표팀 윤덕여(56) 감독은 남북통일축구 당시 선수로 참가한 이후 여자대표팀 훈련을 위해 27년 만에 5.1경기장을 찾았다.
대표팀 경기와 훈련을 위해 두 경기장을 모두 뛰어 본 여자대표팀 주장 조소현(29·현대제철)은 "이 경기장은 생각보다 더 웅장한 것 같다. 느낌이 다르다"며 "김일성경기장은 인조잔디의 길이가 길다. 인조잔디 수준은 한국과 다르지 않고 캐나다에서 열렸던 여자월드컵 당시의 인조잔디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 국제대회 유치에 적극적인 북한 축구
북한 축구의 심장부는 앞으로 더 많은 국가의 취재진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북한이 국제대회 유치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번 여자아시안컵 예선을 국제대회 시리즈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오는 7월 22세 이하(U-22) 아시안컵 예선의 평양 개최가 확정됐고, 10월엔 19세 이하(U-19) 아시아선수권 예선 유치 신청도 해 놓았다.
다 이유가 있는 움직임이다. 한은경 북한축구협회 부회장의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 위원 출마 등과 더불어 국제축구계에 보폭을 넓히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북한은 2012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뒤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각종 스포츠대회 유치를 통해 수입을 창출하고 관광객까지 끌어당긴다는 의지로 보인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평양의 변화와 부드러운 분위기를 보면 북한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