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가 촉한의 황제가 되자 관우는 한동안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전쟁에서 세운 공이 큰데 겨우 오호대장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 군자가 그를 타일렀다. “유비가 황제가 된 것은 당신이 황제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본격적으로 인사조치가 취해지자 어떻게 논공행상을 할 것인지 지지자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새로운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눈에 띄지 않게 도와준 사람들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정부는 특별하다. 촛불집회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고, 헌정 사상 최초로 장미대선이 치러졌으며 9년 6개월의 보수정권이 막을 내렸다. 크나큰 역사의 굴곡을 딛고 일어선 정부이기에 그만큼 알게 모르게 땀 흘려 일한 인사들이 많다.
그 옛날 자식을 사법고시에 합격시키기 위해 어머니들이 시장에 나가 콩나물 장사를 하고, 폐품을 팔아 번 돈을 살뜰히 모아 서울로 돈을 부쳐주는 심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만약 자식이 어머니의 공으로 사시를 합격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모시지 않는다면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한 지인을 만났다. 그는 벌써 화병이 나 있었다. 근 4년 동안 오직 한 사람만 보고 달려왔는데 자신에게는 전화 한 통 안 왔다고 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는데요.” 연신 찬물을 들이키는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이 당선되면 제일 먼저 내가 변해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80년대의 일이다. 유명한 언론인이 있었다. 그 분은 여러 가지 정치적 탄압을 받고 있었다. 아무도 그 분을 가까이 하지 않아 댁을 방문하는 이가 없었지만 나만은 자주 찾아뵈었다. 자연히 그 분과 나와의 관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마침내 정권이 바뀌고 1990년대 말 그 분은 모 언론사 사장이 됐다. 높은 자리였기에 청탁이 이어졌다. 나를 통하면 청탁이 성공할 줄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자주 인사하던 수위까지 내 손을 잡고 부탁했다. “우리 애가 꼭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게 힘 좀 써주세요.”
어느 날 하도 간곡한 부탁을 받은 나는 이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분을 만나게 됐다. 자리를 함께 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말 한 마디 못하고 일어서게 되었는데 순간 결심했다. 앞으로 절대 정치인이나 권력 근처에는 가지 않겠다고. 또 그 누구에게도 그들과 친하다고 말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자신이 지지했던 사람이 잘 된다면 '마이 플레져(도움이 되어 기뻐요 정도의 인사)'로 끝나야 한다. 내가 그 사람에게 쏟은 공을 계산하다보면 자기 자신만 초라해진다. 그 사람이 보답으로 나를 불러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휴대전화만 붙잡고 있다 보면 허탈해지기만 한다.
처음 그 사람을 지지했을 때 마음은 내가 잘 되려는 게 아닌, 나라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만 간직하면 된다. 태양은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타버리고 멀어지면 추워진다. 태양이나 사람이나 모두 적당한 지근거리를 둬야 한다. 항상 멀리서 기도하고 마음으로 협조해주는 힘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