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감독'의 임무를 대신 수행하는 자리다. 감독이 임기 도중 자리를 비우거나 팀을 떠났을 때, 차기 감독이 부임할 때까지 대신 팀을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23일 KBO 리그 역사에는 감독 대행이 또 한 명 추가됐다. 김성근 한화 감독이 중도 퇴진하면서 이상군 투수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게 됐다. 이 대행은 KBO리그 역대 55번째 감독 대행이다. 감독의 해임 혹은 사퇴로 대행을 맡게 된 사례로만 따지면 역대 38번째다. 김 감독이 갑자기 떠난 23일 경기부터 곧바로 대전구장 더그아웃 감독석에 앉았다.
사실 감독 대행만큼 어렵고 부담스러운 자리도 없다. 잘해야 본전. 성공 확률도 높지 않다. 대부분 전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팀을 떠난 뒤 지휘봉을 이어 받는 게 일반적이라서다.
물론 예외도 있다. 2004년 7월 김성한 감독의 대행으로 나선 KIA 유남호 감독 대행은 후반기 26승 18패라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하위권에 처졌던 KIA를 준플레이오프까지 이끌었다. 이듬해 정식 감독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2001년 5월 이광은 감독의 바통을 이어 받았던 김성근 감독 대행도 그랬다. 잔여 경기 49승 42패로 승률 5할을 넘기면서 LG에 다음 시즌을 향한 희망을 안겼다. 역시 정식 감독이 돼 이듬해 LG를 한국시리즈에 올려 놓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드문 사례일 뿐이다. 분명한 한계가 있다. 감독이 시즌 도중 물러날 정도로 바닥으로 처진 팀이다. 정식 감독도 아닌 감독 대행의 지휘 아래 극적인 반등을 이뤄내기란 쉽지 않다. 감독 대행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만한 환경과 권한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한 전임 감독은 "감독 대행 체제에서 팀 성적이 이전보다 상승한다고 해서 감독 대행의 역량으로 갑자기 팀이 달라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전임 감독이 떠나면서 일시적으로 분위기가 전환된 효과가 오히려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역대 감독대행을 거친 38명 인사 가운데 '대행' 꼬리표를 떼고 감독으로 정식 계약한 인물은 총 14명밖에 없었다. 이재우 윤동균(이상 OB) 이희수(한화) 유남호 서정환(이상 KIA) 유백만 천보성 김성근(이상 LG) 이만수(SK) 강병철 김명성 우용득(이상 롯데) 강태정(청보) 김준환(쌍방울)이 전부다.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2006년 LG에서 이순철 전 감독을 대행해 잔여 시즌을 치른 뒤 2012년 롯데에서 프로야구 감독이 된 케이스다. 그 가운데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끌었던 인물은 강병철 감독(1984년)과 이희수 감독(1999년)밖에 없다.
김준환 감독은 1999년 감독 대행을 거쳐 그해 말 사령탑으로 선임됐지만, 이듬해 초 팀이 해체돼 정작 감독으로는 한 경기도 지휘하지 못하는 불운도 겪었다.
그동안 역대 가장 많은 감독대행이 거쳐간 팀은 LG(전신 MBC 포함)와 롯데, 현대(전신 삼미-청보-태평양 포함)다. 총 여덟 차례나 감독대행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그 다음이 감독대행 7명을 뒀던 두산(전신 OB 포함)과 해태. 그 뒤로는 삼성(5회)-한화·쌍방울(4회)-SK(3회)-넥센(1회) 순으로 이어진다. 반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감독 대행을 두지 않았던 팀은 2010년 이후 출범한 두 구단밖에 없다. NC는 초대 김경문 감독이 6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다. kt는 1대 조범현 감독이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난 뒤 2대 김진욱 감독이 부임했다. 김경문·조범현·김진욱 감독 모두 임기 내 전 경기를 무탈하게 지휘했다.
사실 55차례에 달하는 감독 대행 사례 가운데 약 30%(17회)는 감독의 개인 사정에 따른 '한시적 대행'이었다. 지난해 5월 한화 김성근 감독이 시즌 도중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게 돼 김광수 수석 코치가 15일간 지휘봉을 잡은 것과 같은 선상이다. 최초 사례는 다름 아닌 김성근 감독이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8월 김영덕 OB 감독이 보름 동안 자리를 비웠을 때 투수 코치에서 감독 대행이 됐다. 대행으로서 성적은 5승2패였다. LG 역시 초창기 고 김동엽 감독의 영향으로 감독 대행 체제가 잦았다. 해태 초대 사령탑이었던 김 감독은 1983년 MBC 지휘봉을 잡고 팀을 한국시리즈로 진출시켰다. 그러나 구단이나 선수단과의 불화로 세 차례나 팀을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유백만 코치와 한동화 코치가 전임 백인천 감독 시절부터 김동엽 감독 시절 사이에 각각 세 차례와 두 차례씩 감독대행을 맡아야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래도 가장 여러 차례 감독 대행으로 이름을 올린 인물은 역시 유남호 대행이다. 다섯 번이나 감독 대행을 맡아 역대 최다 기록을 남겼다. 주로 '코끼리' 김응용 감독을 대신해 감독석을 지키곤 했다. 다혈질인 김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하다 퇴장 당하면, 그 자리를 메울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998년 9월 4일, 1999년 5월 1일, 2000년 9월 1~3일, 2000년 10월 5일처럼 '하루 천하' 혹은 '사흘 천하'로 기록된 날이 많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