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관중으로 들어찬 안방에서 당한 1-3 완패. 고개를 숙일 법도 했고 말 한 마디 하기도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하지만 신태용(47) 한국 U-20 축구대표팀 감독은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마지막까지 열심히 뛴 선수들의 투혼을 칭찬하고 싶다"고 말문을 연 신 감독은 "성적은 하루 아침에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라는 말로 대회를 치르면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간결하게 전했다.
신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0 대표팀은 이날 30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16강 포르투갈과 경기서 1-3으로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대회 역대 최고 성적인 4강(1983년 멕시코 대회)을 노렸던 한국의 도전은 16강에서 마무리됐다.
◇신태용의 강단, '언제까지 수비축구만 할텐가' 시작이 워낙 좋았기에 기대가 컸다. 조별리그 2연승으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을 때 많은 이들은 신태용팀에 '역대 최고 성적'의 신화를 새로 써주길 바랐다. 하지만 잉글랜드와 조 최종전에서 패하고, 토너먼트 첫 경기인 16강 포르투갈전에서 패하면서 뜨거웠던 기대는 차갑게 식은 실망으로 돌아왔다.
칭찬과 환호가 비판과 실망으로 돌아오리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사람은 신 감독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기기 위해 수비적으로 내려서는 것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이런 말씀을 드리면 분명히 욕을 얻어먹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래도 신 감독은 "세계대회에서 성적을 내기 위해 수비축구를 하는 것보다 포르투갈 같은 팀과도 대등하게 싸우면서 이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 한국 축구가 한걸음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패배가 증명한 '강팀의 조건' 신 감독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또 있었다. 신 감독은 "이번 대회 감독직을 맡고 준비하면서 본선 나서는 상대팀의 명단을 봤다"고 얘기한 뒤 "잉글랜드나 아르헨티나, 당장 오늘 상대인 포르투갈만 해도 내로라하는 1군 프로팀에서 뛰는 선수들이 있고 못해도 B팀에서 뛰는 선수들이 왔다. 그에 비해 우리는 K리그에서 명단에도 못 들어가고 대학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포르투갈의 경우 자국리그 명문인 벤피카와 포르투, 스포르팅, 브라가 등의 1, 2군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어 그는 "이런 대회에서 성적을 내려면 리그에서 경기에 많이 뛰어야 한다. 잉글랜드도 보면 EPL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많다. 우리는 그런 것도 느끼지 못하면서 오로지 성적만 내야한다고 한다"고 꼬집은 뒤 "성적이란 건 하루 아침에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열심히 노력했지만 경기 경험에서 쌓인 실력차는 분명히 존재했다는 얘기다. 이승우(19·바르셀로나 후베닐A) 역시 신 감독과 같은 부분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신 감독의 말대로다. 한국은 이번 월드컵을 치르면서 개최국으로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신경도 많이 썼고 관심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정작 대회에서 항상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 강팀들과는 토양과 조건부터 차이가 있었다. 대회 제일의 우승 후보로 불리는 프랑스나 한국과 상대했던 잉글랜드, 포르투갈 등 유럽 팀들은 물론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등 남미팀들의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은 이번 대회에 마커스 래쉬포드(20·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킬리안 음바페(19·AS모나코) 등 '톱 스타' 없이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단순히 성적만이 아니다. 경기력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신 감독이 지적한대로 '경기에 나가면서 쌓은 경험'이 있고, 그런 경험을 쌓게 해주는 토양이 있기 때문이다. 즉 튼튼한 자국 리그가 있고 유스 시스템이 있으며 재능있는 선수가 나오면 어린 나이에도 활약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있다는 얘기다.
신 감독은 "경기에 나와서 보이지 않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런 부분들은 꾸준히 경기를 하면서 보완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국 축구도 밝게 쭉쭉 뻗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의 신념을 전했다. '터를 닦아야 집을 짓는다'는 속담처럼,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는 기반이 될 땅부터 단단히 다져야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배운 대회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