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는 지난 7일 잠실 삼성전에 2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해 1회 2루타, 2회 3루타, 4회 단타, 5회 홈런을 각각 때려 냈다. 네 타석 만에 KBO 리그 역대 23호 사이클링 히트를 완성했다. 이 경기 전까지 주로 대타나 대수비 요원으로 활약했고, 이날도 한 달여 만에 선발 출장 기회를 잡은 선수다. 그간의 설움을 털어 내는 듯 폭발적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면서 큰 기록까지 작성했다.
네 타석 만에 사이클링 히트에 성공한 타자는 23명 가운데 6명밖에 없었다. 여기에 정진호는 5회가 채 끝나기도 전에 사이클링 히트를 이뤄 냈다. 역대 최초다.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빨리 사이클링 히트를 완성한 선수로 남게 됐다.
사이클링 히트는 과거에는 쉽게 보기 어려웠다. 삼성 오대석이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6월 12일 구덕 삼미전에서 1호 기록을 작성한 뒤 5년 동안 나오지 않았다. 1987년 빙그레 이강돈(8월 27일 잠실 OB전)과 롯데 정구선(8월 31일 인천 청보전)이 나흘 간격으로 2·3호 기록을 만들었다. 그러나 한 해 두 명의 사이클링 히터가 나온 뒤에도 쉽게 물꼬는 트이지 않았다. 1990년 빙그레 강석천, 1992년 OB 임형석, 1994년 LG 서용빈까지 2~3년 간격으로 한 명씩 등장했다.
2년 뒤인 1996년 롯데 김응국(4월 14일 사직 한화전)과 삼성 양준혁(8월 23일 대구 현대전)이 같은 해에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지만, 이후 네 시즌 동안 사이클링 히트는 실종됐다. 2001년 삼성 매니 마르티네스와 현대 전준호가 각각 5월과 7월에 두 달 간격으로 해냈을 뿐이다. 삼성 양준혁(2003년)·한화 신종길(2004년)과 LG 안치용(2008년)·두산 이종욱(2009년) 사이에도 4년 공백이 있었다. 한 시즌에 한 번 사이클링 히트를 보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LG 이병규가 2013년 7월 5일 목동 넥센전에서 4년 만에 침묵을 깬 뒤로 사이클링 히트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두산 오재원이 2014년 5월 23일 잠실 한화전, NC 에릭 테임즈가 2015년 4월 9일 광주 KIA전에서 기록을 작성하면서 역대 최초로 3년 연속 사이클링 히터가 탄생했다. 테임즈는 내친 김에 2015년 8월 11일 목동 넥센전에서 다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해 역대 최초로 한 시즌에 2회 달성한 타자로 남았다.
여세를 몰아 2016시즌에는 무려 세 번이나 사이클링 히트가 나왔다. KIA 김주찬이 4월 15일 광주 넥센전, 두산 박건우가 6월 16일 광주 KIA전, 삼성 최형우가 8월 18일 수원 kt전에서 차례로 사이클링 히트를 해냈다. 올 시즌에도 마찬가지다. 시즌 개막 직후인 지난 4월 7일 잠실 두산전에서 넥센 서건창이 첫 사이클링 히트를 작성했고,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벌써 정진호가 두 번째 기록을 만들어 냈다.
KBO 리그 36년 역사에서 나온 23번의 사이클링 히트 가운데 7번이 최근 세 시즌에 몰려 있는 셈이다. 2015년과 2016년은 기록적인 타고투저 시즌이었다. 올해는 스트라이크존 확대의 영향으로 4월까지 '투고' 양상을 보였지만, 5월 이후 다시 타자들이 기세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