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무명이었던 그가 비로소 주목을 받고 있다. 11일 대전 한화전에선 4할대 타율을 안고 나섰다. 10경기 출장 기록일 뿐이지만 오랜 노력의 결과다.
야구 인생이 순탄치 않았다. 포항제철고와 동국대 졸업반 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상무에서 병역을 마친 뒤 2011년 삼성 육성선수로 계약했다. 그해 퓨처스리그에서 4할 타율을 기록했으나 정작 1군에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김정혁은 연습벌레다. 너무 많은 훈련량으로 부상으로 신음했다. 지난해 데뷔 후 최다인 46경기에 나왔으나 한계를 드러내며 다시 2군 생활을 했다.
이원석의 부상, 조동찬의 컨디션 난조로 최근 기회를 얻었다. 지난 6일 1군 엔트리 등록과 동시에 선발 출장해 5타수 4안타로 승리의 발판을 놨다. 이어 9일 한화전에선 4-5로 뒤진 9회초 1사 만루에서 데뷔 첫 결승타(2루타)를 기록했다. 10일까지 1군 10경기에서 34타수 14안타(타율 0.412)에 7홈런을 기록했다. 1군 승격 전엔 2군에서 3할8푼대 타율에 4홈런을 쳤다.
실망하지 않고 2군에서 날카로운 스윙을 하던 그는 지금 1군에서 야구 인생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 요즘 행복하겠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웃음)"
- 상무에서 전역한 뒤 육성선수 계약을 했다. "동국대 시절엔 대표팀에도 뽑혔다. 내가 야구를 잘하는 줄 알았다. 4학년 때 부상을 당했는데, 그래도 드래프트에서 지명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되지 않았다.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 몇몇 팀에서 육성선수 제의가 왔으나 기회가 닿아 상무에 먼저 가게 됐다. 상무에서 야구를 계속할 수 있어 좋았다."
- 2011년 삼성에 입단해 퓨처스리그에서 4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기대가 컸을 텐데. "조금만 더하면 1군에서 뛸 수 있겠다 싶었다. 훈련을 엄청나게 했다. 그게 독이 됐다. 이후 3년 동안 내내 아팠다. 김헌곤과 비슷하다. 후배 헌곤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느낀 게 많았다. 둘이서 밤마다 마지막까지 남아 훈련을 했다. 하루는 2군에 내려와 있던 장원삼 선배가 숙소에서 '방망이 돌리러 가지 마라. 쉴 때 쉬어라'고 했다. 그때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이제는 훈련과 휴식의 구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겠다. 쉬어야 할 때에 야구에 매달리니 정작 기회가 왔을 때 아팠다."
- 뭔가 안 풀리는구나 싶었겠다. "문고리도 제대로 못 잡을 정도였다.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 생각까지 했다."
- 지난해 발디리스의 부상으로 46경기(타율 0.236·2홈런·11타점)에 출장했다. "정말 많은 걸 느꼈다. 낮경기를 하는 2군과 달리 밤에 야구를 하니 크게 힘들진 않았다. 그런데 내가 긴장을 많이 했는지 경기가 끝나면 속이 더부룩해졌다. 집에 가자마자 바로 잤다. 아침에 일어나 곧장 야구장에 도착해 경기 전에 조금 식사를 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또 바로 잤다. 2군에선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는데, 1군에선 웨이트를 할 힘이 없었다. 그렇게 2주가 지나니까 방망이를 들 힘조차 없더라. 직구가 눈에 들어오는데 반응이 늦었다. 볼로 보이는 변화구에도 스윙이 나갔다. 결국 19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뒤 2군에 내려갔다. 처음 찾아 온 기회를 날렸다. 잠이 안 올 정도로 억울했다. 실력아 안 돼서 내려갔으면 인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체력 관리에 실패한 게 너무너무 억울했다. 요즘은 아침에 무조건 일찍 일어나 한두 시간 웨이트 훈련을 한다. 밥 세 끼를 다 챙겨먹는다."
- 체력 관리 외에 달라진 점은. "야구를 시작한 뒤로 타격폼을 처음 바꿨다. 2군에서 김종훈, 강봉규, 강기웅 코치 세 분이 맨투맨으로 붙어 도와주셨다. 이전에는 상체를 많이 숙이고 타격을 했다. 이러면 스윙 때 불필요한 움직임이 많아진다. 페이스가 좋지 않을 때 변화구가 잘 맞지 않았다. 지금은 상체를 많이 세웠다. 스윙도 작게 바꿨다."
- 우리 나이로 서른세 살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고비도 많았을 텐데. "지난해 겨울이 가장 힘들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1군에서의 기회를 스스로 날렸다. 나이도 있는 만큼 이런저런 걱정이 들었다. 야구를 많이 사랑하니까 목표를 잡고 다시 시작했다. 무엇보다 인복이 참 많다. 내가 나이가 있어서인지 코치님들이 곁에서 '정혁아, 너는 무조건 할 수 있다'며 기운을 북돋워줬다."
- 홈에서나 1루에서 슬라이딩 때 간절함이 엿보인다. "우리팀은 1루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이 금지돼 있다. 어떻게든 살아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목숨을 걸고 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플레이가 나온다."
- 최근 활약으로 '김정혁'의 존재를 알렸다. "지난해도 이러다 만 적이 있다. 타격이 잘됐을 때 들뜨기도 했고 내 기록도 찾아보곤 했다. 프로 첫 홈런(2016년 6월 4일 대구 한화전)까지 기록하니 욕심이 생기며 스윙도 커졌다. 지난해가 큰 경험이 됐다. 올해엔 그라운드에 나오기 전까지 '들뜨지 말자, 다시 시작하자'고 백 번은 스스로 외치는 것 같다. 어제 잘했어도 '어제는 다 잊고, 오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지난해보다 마음이 편한 것 같다."
- 아직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목표가 있나. "지난해에도 발디리스나 다른 선수가 1군에 돌아오면 어떻게 되나라는 생각에 스스로 쫓겼다. 목표를 잡을 때는 아니다. 아직 주전이 아니다. 들뜨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다. 야구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