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오후 6시30분 카타르 수도 도하의 한 상점가. 해가 지자 낮에 썰렁했던 거리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상점들은 화려한 조명을 밝히고 손님을 맞았다.
식당들도 닫았던 문을 열고 음식 주문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20여 개의 레스토랑 몰린 이곳은 적게는 서너명부터 많게는 40~50여 명의 손님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이들은 대기 중에도 메뉴판을 보며 회의를 하듯 의논하며 신중하게 음식을 골랐다. 그러는 동안 상점가 주변 도로는 밀려드는 차량들로 뒤엉켰다.
카타르는 지난달 27일부터 '라마단'에 들어갔다. 전 세계 이슬람 신자(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해야 한다. 라마단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코란의 계시를 받은 날을 기려 한 달 동안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음식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것을 말한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카타르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8차전 원정경기가 열린 도하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하 하마드 국제공항에 착륙하는 항공기는 물론 시내 곳곳에는 '현재 카타르는 라마단 기간'이라는 안내 문구가 눈에 띄었다. 네팔 출신 택시기사 람씨는 "라마단이 진행되는 한 달 동안 도하 사람들은 낮밤 생활이 완전히 바뀐다. 낮에는 엄숙하고 경건하게 보내지만 해가 지면 금식을 중단하고 가족, 친지들과 좋은 식사와 선물을 교환하는 축제 분위기에 돌입한다"고 전했다.
반면 라마단 기간의 낮은 인적이 자취를 감추는 시간이기도 하다. 도하 역시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유령 도시를 방불케 했다. 라마단 기간이 겹친 도하는 공공기관을 비롯해 상점은 단축 근무와 영업을 하고, 음식점은 문을 닫았다. 하마드 공항에서 만난 현지 호텔 직원은 파예즈씨는 "라마단 기간에는 음식은 기본이고 물, 담배, 껌도 입에 대지 않는다. 안 그래도 무더운 날씨에 허기진 상태로 활동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도하 시민들은 낮에 돌아다니는 걸 피한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대표팀도 라마단의 영향을 받았다. 대표팀은 카타르 입국 직전인 지난 10일까지 아랍에미리트(UAE)의 라스 알 카이마라는 도시에서 적응 훈련을 했다. 슈틸리케팀이 두바이에서 100여 km나 떨어진 이곳에 훈련 캠프를 차린 이유는 두바이 인근 도시 훈련장 관계자들이 단축 업무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면서 대여가 어려워진 탓이다. 그러다보니 거리가 조금 먼 라스 알 카이마까지 오게 된 것이다.
대표팀이 카타르와 익숙하지 않은 심야 경기를 치러야 하는 것도 라마단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카타르축구협회는 경기시간을 현지시간으로 13일 오후 10시로 정했는데 원칙상 축구 선수도 라마단 기간에는 해 질 때까지 금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위를 조금이라도 더 피하기 위해 이렇게 늦은 시각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