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마리 까치 되어’의 일본어 번역판을 완성했다. 더불어 중편소설 ‘사랑이여’의 일본어 번역도 막 끝냈다. 조만간 ‘한 마리 까치 되어’와 ‘사랑이여’를 일본의 한 출판사를 통해 출판하기 위해 나가노 현의 마츠모토와 호다카를 방문할 예정이다.
일본어 번역판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소설 ‘사랑이여’의 추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소설 ‘사랑이여’는 1987년 노란 개나리가 필 무렵 인연을 맺게 된 영혼결혼식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었다. 법당에 자주 오는 보살님의 부탁으로 백혈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그분의 조카를 만나기 위해 모 대학 병원에 가게 됐다.
병실에 도착하자 핏기 없는 하얀 얼굴의 J양이 나를 맞이했다. 스물일곱 살, 죽기엔 너무도 이른 나이였다. 그녀는 창경궁 복원 공사가 한창인 창밖을 바라보며 “창경궁을 공짜로 구경할 수 있어서 참 좋죠?”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가 미소로 화답하자 “저 개나리가 질 때쯤이면 법사님을 뵐 수 없겠죠”라고 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답 대신 쥐고 있던 염주를 그녀의 손에 쥐여 줬다. “고통 없이 꿈꾸듯 잠들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죽음을 두려워했던 J양은 그제야 웃으며 “부탁이 있습니다. 흔한 미팅도 한 번 안 해 봤는데 죽게 돼서 속상해요. 좋은 사람이 있으면 결혼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보름 뒤 J양은 큰 고통 없이 눈을 감았다.
그녀의 짝은 우연히 나타났다. 병원을 운영 중이던 한 보살님의 남동생이 J양이 죽기 2주 전에 교통사고로 요절한 것이었다. O군이었다. 신부 측은 약간의 반대를 했다. J양은 박사과정을 이수했으며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하던 엘리트였는데 신랑이 될 O군은 택시를 운전하던 평범한 청년이었기 때문이었다.
영혼결혼식 날짜를 잡고 우선 영정 사진과 위패를 법당에 가져다 놓았는데 그때부터 연애가 시작됐다. 법당을 오가는 보살님들의 귀에 영가가 속닥이는 소리, ‘탁’ 하고 과자를 나눠 먹는 소리 등등이 들렸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그렇게 최초의 영혼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두 사람은 즉석에서 내게 축가를 부탁했다. ‘사랑이여’란 노래였다.
나는 못 부르는 솜씨로 열창하다가 그만 2분 동안 기절하고 말았다. 일종의 트랜스 현상이었다. 비록 2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나의 영은 백 년의 시간을 오가며 두 영가의 삼생을 목격했고 그 목격담을 바로 소설 ‘사랑이여’에 담아냈다.
‘영혼결혼식’이란 개념 자체가 없는 일본에 ‘영혼결혼식’을 모티브로 쓴 ‘사랑이여’를 번역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내가 일본을 잘 아는 지일파이기에 무사히 번역판을 완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가까우면서도 다른,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친일이 아닌, 친일을 넘어서는 지일을 해야 일본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요즘 ‘오히사마’라는 일본 드라마를 애청하고 있다. 해님처럼 사람들을 비춰 주는 한 여인의 밝은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로 나가노 현의 청정 도시 마츠모토와 아즈미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츠모토의 아름다운 자연에 이끌려 부끄럽지만 시도 한 편 쓰게 됐다. ‘봄이 오면 마츠모토에 가리’라는 시다. ‘봄이 오면 마츠모토에 가리/눈꽃 같은 메밀꽃 피기 전에 마츠모토에 가리/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곳/백제의 얼이 살아 숨 쉬고/금강송 어우러지는 마츠모토에 가리(이하 생략).’ 곧 마츠모토로 떠나는 내 마음은 소년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설렌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