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한국 축구대표팀의 동행은 결국 '상호 합의 하에 계약 종료'라는 형태로 끝을 맺었다.
대한축구협회(KFA) 기술위원회는 15일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 센터(NFC)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을 발표했다. 아울러 이용수(58) 기술위원장도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 부진의 책임을 지고 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어렵게 내린 결정이지만 시기가 너무 늦었다.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경질 여론은 최종예선이 시작된 지난해 9월부터 불거졌다. 최종예선 첫 경기였던 중국전에서 3-2로 불안하게 승리하고, 조 최약체로 꼽혔던 시리아와는 졸전 끝에 0-0으로 비기면서부터다. 경기 결과는 물론 내용면에서 지적이 잇따랐고 감독 교체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KFA의 대응은 안일했다. 지난해 10월 이란 원정에서 무기력하게 0-1로 패한 뒤에도, 우즈베키스탄에 진땀승을 거둔 뒤에도 협회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 뒤로도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KFA는 차두리(37)를 전력 분석관으로 선임하고, 설기현(38)을 코치로 불러오는 등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조치만 반복했다. 그 사이에 한국 축구는 점점 더 부진의 늪으로 빠져 들었고 중국 원정 첫 패배, 카타르전 33년 만의 패배 등 굴욕적인 기록을 연달아 경신하며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지금 한국 축구가 맞닥뜨린 위기는 '대안이 없다'는 핑계로 눈앞에 직면한 위기 상황을 회피한 결과다.
사령탑 교체 기회는 몇 번이나 있었다. 우즈베키스탄과 5차전이 끝난 뒤 4개월의 휴식 기간이 주어졌을 때가 최적의 교체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KFA는 5경기 3승1무1패의 표면적인 성적에 만족하며 경질 여론을 무시했다. 7차전 시리아와 경기가 끝난 뒤에도 경질 요구가 거셌지만 협회의 선택은 또다시 유임이었다. 대신 정해성(59) 수석코치 영입을 임시방편으로 내세웠다. 수 차례 골든 타임을 무시한 결과가 바로 '감독 경질-기술위원장 동반 사퇴'로 이어졌다. 그것도 최종예선 2경기를 남겨둔 급박한 상황에서 말이다.
당초 KFA가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며 목표로 삼았던 것은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이라는 대기록이다. 현재 한국은 A조 2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3위 우즈베키스탄과 승점 1점 차에 불과하다. 더구나 남은 2경기 상대가 조 1위 이란(홈),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원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본선 직행을 장담하기 어렵다.
사령탑을 잃은 한국 축구가 최종예선 남은 두 달 동안 이 위기를 벗어날 타개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어떤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그 책임은 오롯이 협회가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