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서 만난 이대훈(25·한국가스공사)은 여유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그는 전날 같은 장소에서 열린 2017 무주 세계선수권 남자 68kg급에서 대만의 황 유옌을 26-8로 대파하고 이 대회 통산 3번째 정상(2011·2013년)에 올랐다.
이대훈은 오랜만에 웃었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각종 대회에서 금메달을 쓸어담으며 한국 태권도의 '간판'으로 불렸다. 하지만 2015 첼랴빈스크(러시아) 세계태권도연맹(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8강과 2016 리우 올림픽 8강 탈락 뒤 패자부활전 끝에 3위 등 최근 2차례 메이저 대회에서 부진하며 '한물 갔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이대훈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내가 기량이 떨어진 것 아닌가'라는 걱정을 했어요. 그러다 차라리 기대를 버리자고 마음 먹은 게 부담감을 더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우려와 달리 이대훈은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했다. 락차이 하우이홍통(태국)과 64강전에서 34-10로 앞선 가운데 반칙승을 거둔 그는 32강 예라실 카이르베크(카자흐스탄)를 39-27, 16강전 에디발 폰테스(브라질)를 25-7로 제압했다. 이어 펼쳐진 8강 아볼파지 야구비주이바리(이란)를 상대로는 접전 끝에 15-11승을 거뒀지만 4강 블라디미르 다라클리예프(불가리아)를 맞아선 23-6으로 다시 완승을 거뒀다. 8강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를 최소 10점 차 이상 리드를 지키며 상대를 압도한 것이다.
'화려한 귀환'의 비결은 '턱걸이'였다. 리우올림픽 이후 이대훈은 '연약하다' '말랐다' 등 일부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가 연거푸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자 키 183cm의 호리호리한 체격을 비꼰 것이다. 주로 발차기로 점수를 내는 태권도의 특성상 선수들은 타 투기 종목 선수들에 비해 상체 근력 발달이 덜한 편이다. 실제로 태권도 대표팀은 리우 올림픽 이전까지만 해도 상체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악바리' 이대훈은 편견을 바꾸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저는 악플에 기가 죽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채찍질로 생각하고 지적받은 부분을 보완하려 하는 편이죠. 당시 저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계를 넘어서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었어요."
이대훈은 약점으로 지적받은 상체 힘 키우기에 나섰다. 그가 난생 처음 턱걸이 연습을 시작한 이유다.
"운동 선수들은 턱걸이 수십 개씩은 거뜬히 해낼 거라고 생가하잖아요. 특히 투기 종목 선수들은 말이죠. 그런데 저는 사실 턱걸이를 한 개도 못했어요. 그래서 처음은 그냥 무작정 매달려 있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그렇게 2분씩 매달리다가 버틸만 해질 때쯤에는 시간을 조금씩 늘렸죠."
덕분에 올해 3~6월 대표팀 합숙훈련은 이대훈이 태권도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혹독했다. 이전엔 팀 훈련이 끝난 후 휴식을 취했다면, 이번엔 곧장 웨이트트레닝장으로 직행해 턱걸이로 상체 근력을 기르는 데 투자했다. 말그대로 '지옥훈련'이었던 셈이다.
"훈련 중 잠깐 쉬는 시간에도 10초씩 매달렸고, 훈련이 끝난 뒤에도 홀로 철봉과 씨름을 했어요. 코치 선생님들이 '또 턱걸이 하니?' '지금은 몇 개나 하니' 등 제가 하는 턱걸이를 두고 농담이 생겨날 만큼 철봉에 붙어서 살았어요."
[사진=연합뉴스]
피나는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그가 턱걸이에 '올인'한 지 3개월이 지나면서 정확한 자세로 턱걸이 5회를 할 수 있을 만큼 힘이 붙었다.
"이때부터는 더욱 악착같이 한 것 같아요. 최근에는 한 자리에서 턱걸이를 10회씩 5세트를 거뜬하게 하는 정도가 됐고요. 2015년 세계선수권 당시와 비교하면 상체 힘이 3배 정도 좋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가운데 태군도 규칙이 변경됐다. WTF는 적극적인 경기 운영을 유도하고자 이번 대회부터 새로운 룰을 도입했는데 그 중 '두 선수가 몸싸움을 벌이는 상황에서 손으로 미는 것'을 허용했다. 상대를 밀어내거나 버틸 만큼의 상체 힘이 있으면 벌어진 공간을 파고들어 포인트를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덕분에 새로운 룰에 최적화돼 있던 이대훈은 물 만난 고기처럼 매트를 누볐다.
"손으로 밀어내고 공격하는 플레이를 승부처에서 적절하게 사용했어요. 우승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같아요. 꾸준히 턱걸이를 한 덕분이죠."
다시 정상에 선 이대훈은 앞으로 더 거침없이 달릴 예정이다. 다음 목표는 내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이다. 2010년과 2014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한 그는 자카르타 대회까지 우승하면 3연패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저는 보통 목표를 속으로 생각할뿐 누군가에게 알리는 편은 아닙니다. 이번에 우승했다고 해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요. 그래도 만약 기회를 얻는다면 아시안게임에 나가 3연패를 달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앞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밟아나가야죠."
인터뷰 말미에 이대훈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아시안게임 우승보다 더 이루고 싶은 게 있어요. 더 빠르고 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고 싶어요. 우승도 우승이지만 태권도가 재미있는 스포츠라는 생각을 팬들에게 심어주고 싶거든요." 그는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