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은 중요하지 않다. 한 명의 선수가 처음으로 프로 1군 무대를 밟았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가 있다. 많은 선수들은 데뷔 첫날 느낀 설렘과 긴장감을 한참 지난 후에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전성기에는 잊고 살다가도 은퇴할 때가 되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올리곤 한다.
올해는 가장 인상적으로 데뷔한 선수는 한화 김태연이다. 지난달 21일 육성선수에서 정식 선수로 전환됐고, 바로 그날 대전 넥센전에 선발 출장해 프로 데뷔 첫 타석에서 초구를 쳐 홈런을 날렸다. 동시에 '신인 데뷔 첫 타석 초구 홈런'을 때려 낸 역대 최초의 선수로 기록됐다. 데뷔 첫 타석 초구 홈런만으로는 LG 짐 테이텀(2000년 4월 5일 사직 롯데전)과 두산 송원국(2001년 6월 23일 잠실 SK전)에 이어 역대 세 번째. 그러나 프로 1년 차 신인 선수 기록은 김태연이 유일했다. 2군에 묻혀 있던 무명 신인 선수가 단숨에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올해 최고의 신인으로 꼽히는 넥센 이정후는 대타로 데뷔했다. 시즌 개막전이던 3월 31일 고척 LG전에서 8회 박동원 타석에 대신 투입됐다. 시범 경기 타율 0.455로 1위에 오른 대형 신인의 프로 첫 타석. 이정후는 LG 투수 진해수의 초구에 과감하게 스윙했다. 빗맞은 타구가 우측으로 뻗어가 안타가 되는 듯했지만, LG 우익수 채은성이 다이빙해 잡아냈다. 데뷔 첫 타석 안타에 실패한 이정후는 시즌 네 번째 경기에서야 3안타를 몰아치며 프로 첫 안타를 신고했다. 그 후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다. 올 시즌 넥센이 치른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가장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히고 있다.
사실 선수 대부분이 데뷔전을 떠올리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마운드에 처음 올라갈 때, 혹은 첫 타석에 들어설 때 "눈앞이 하얘지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는 것이다. 경기 직전까지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막상 자신의 차례가 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온몸에 긴장감이 감돈다.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떡잎부터 남달랐던 신인들도 많다. 한화는 2006년 4월 12일 잠실 LG전 선발투수로 19세 고졸 신인 류현진(현 LA 다저스)을 내세웠다. 류현진은 LG 1번 타자 안재만과 풀카운트 접전 끝에 7구째 시속 151㎞짜리 직구를 던져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데뷔 첫 타자 상대 삼진. 이후 그는 삼진 아홉 개를 더 잡아냈다. 역대 데뷔전 최다 탈삼진 기록이었다. 7⅓이닝 10탈삼진 무실점으로 데뷔 첫 승도 따냈다. KBO 리그 지형을 뒤흔든 '괴물'의 등장을 알렸다.
류현진의 팀 선배이자 역대 유일한 200승 투수인 빙그레 송진우도 그랬다. 1989년 4월 12일 대전구장에서 처음 마운드에 올라 롯데를 상대로 9이닝 4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1985년 롯데 박동수 이후 4년 만이자 역대 다섯 번째 데뷔전 완봉승 기록. 데뷔 첫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둔 투수는 송진우 이후 지금까지 28년째 나오지 않았다.
이뿐 아니다. 삼성 이승엽은 1995년 4월 15일 잠실 LG전에서 9회 류중일 전 삼성 감독의 대타로 프로 데뷔 첫 타석에 나섰다. 상대는 LG 특급 마무리 투수 김용수. 그러나 겁 없는 신인은 레전드 투수를 상대로 당차게 중전 안타를 때려 냈다. 삼성 양준혁도 1993년 4월 10일 대구 쌍방울전에서 6타수 3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출발부터 '안타 제조기'였다.
그러나 여전히 데뷔전에서 고전한 선수가 더 많다. SK 김광현은 2007년 4월 10일 문학 삼성전에서 프로 무대 첫발을 내디뎠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 애를 먹었다. 앳된 고졸 신인 투수는 결국 0-0으로 맞선 4회 양준혁에게 비거리 125m짜리 대형 홈런을 맞았다. 안산공고 재학 3년 동안 단 하나의 홈런도 맞지 않았던 김광현이 데뷔 첫 경기에서 홈런에 무너졌다.
한화 정근우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2005년 SK에 입단했다. 그해 현대와의 수원 개막전에 1번 타자 3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유격수 김민재, 2루수 정경배라는 쟁쟁한 키스톤콤비와 함께였다. 첫 타석부터 안타를 칠 때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1루에서 바로 견제 아웃당했다. 그는 훗날 "안타 2개를 쳤는데도 너무 긴장해서 경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며 "도루라면 자신 있었는데도 2루가 한참 멀어 보이고 몸이 안 움직였던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프로야구 역사를 빛낸 레전드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태 선동열은 1985년 7월 2일 대구 삼성전에서 재일교포 투수 김일융과 선발 맞대결을 펼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7회까지 무실점으로 맞섰다. 그러나 8회에만 5안타 2볼넷을 내주며 5실점했다. 선동열의 프로 통산 40패 가운데 첫 패배가 데뷔전에서 나왔다. 롯데 최동원도 1983년 4월 3일 구덕 삼미전에 구원투수로 등판했다가 2⅓이닝 2실점으로 부진했다. 삼성 김시진 역시 그해 5월 3일 대구 삼미전에서 0-2로 뒤진 8회 1사 후 처음으로 프로 마운드에 올랐지만, 볼넷과 2루타, 안타, 희생플라이를 연이어 허용하며 1⅔이닝 3실점(2자책점)으로 돌아섰다.
역대 최고 유격수 가운데 한 명이던 MBC 김재박은 프로 원년인 1982년 아마추어 선수 자격으로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뒤 그해 9월 말 뒤늦게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나이 28세. 10월 2일 대구 삼성전에서 '개구리 번트' 스타가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삼성 선발 이선희에게 꼼짝없이 당했다. 삼진 2개를 포함해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김재박의 무안타 행진은 이듬해 4월 3일 OB와의 잠실 개막 2연전 두 번째 경기에서 19타석 만에 깨졌다.
이외에도 수많은 선수가 데뷔전에서 잊지 못할 기억을 새겼다. 빙그레 고졸 신인 정민철은 데뷔 첫 상대 타자에게 만루홈런을 호되게 얻어맞고도 다음 날 선발 로테이션 합류 통보를 받고 깜짝 놀랐다. 삼성 정인욱은 낯선 신인 선수의 이름을 착각한 구단 직원의 실수로 전광판에 '정현욱'이라는 이름을 띄운 채 데뷔 첫 공을 던졌다. 현대 김수경은 데뷔 첫 타자와 풀카운트까지 맞섰다가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공을 던졌지만,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외쳐 뜻하지 않은 행운의 삼진을 잡았다.
기념비적인 장면도 있다. OB 조범현은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인 1982년 3월 28일 동대문 MBC전에 8번 타자 겸 포수로 선발 출장해 에이스 박철순과 배터리로 호흡을 맞춰 팀 승리를 이끌었다. 같은 팀 동료였던 김경문은 사흘 후인 3월 31일 구덕구장에서 열린 롯데전에서 8회 선발포수 조범현 대신 마스크를 썼다. 타석에는 들어서지 않고 포수로서만 1이닝을 소화했다. 그때 서로 임무를 교대하던 두 포수는 은퇴 후 동시대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김 감독이 프로 통산 800승, 조 감독이 600승을 각각 넘어섰다. 당시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던 멋진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