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힘차게 잠실벌을 누비던 '적토마' 이병규의 질주가 공식적으로 끝났다. LG는 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전에 앞서 그의 은퇴식을 열었다.
은퇴는 이미 지난해 11월 선언했다. 보류선수 명단 제출 마감일(25일)을 앞두고 결정을 내렸다. 이병규는 "팀 후배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가족과 같던 LG를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은퇴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의지보다 이른 은퇴였다. 대신 그동안 구단에 헌신한 공을 보상받았다. LG 구단은 지난달 20일 이병규의 은퇴식 일정을 발표하면서 "팀 내 야수 출신 최초로 이병규의 등번호 9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이병규는 KBO 리그 역대 13번째 영구결번 선수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 구단 역사에선 투수 김용수에 이어 두 번째다.
LG 구단이 배출한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선수로 인정받았다. 그만큼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이병규는 1997년 타율 0.305·7홈런·69타점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해 신인상도 차지했다.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거듭났다. 총 7회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2013년엔 최고령 사이클링히트(7월 5일 넥센전) 기록과 함께 타격왕(타율 0.348)에 오르기도 했다. 2014년 5월 6일 잠실 한화전에선 역대 네 번째로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한 선수가 됐다. 최소 경기(1653경기) 2000안타 기록도 세웠다.
앞으로 LG에선 더 이상 등번호 9번을 유니폼에 새긴 선수가 나오지 않는다. 9번은 뛰어난 타격 능력과 리더십을 상징하는 이병규만의 번호로 남게 됐다. 이병규는 마지막 순간까지 "후배들이 팬들이 원하는 야구를 해주길 바란다"며 LG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다음은 이병규와의 일문일답이다.
-구단 역대 두 번째로 영구결번이 된 선수가 됐다. 소감을 전한다면. "프로야구 36년 역사에 13번밖에 없는 일이다. 정말 큰 의미가 있다. 영광스럽다. 우승을 못한 선수 중 유일하게 영구결번이 됐다고 들었다. 그 아쉬움은 있다. 그래도 기쁘다."
-구단 1호인 영구결번은 팀 선배던 김용수다. "사실 입단했을 때부터 영구결번을 목표로 삼았다. 김용수 선배와 함께 야구를 했다. 선배님이 1호 영구결번이 되신 뒤 더 욕심을 냈다. 목표를 이뤘다."
-오랜만에 트윈스 유니폼을 입었다. 감회가 어떤가. "현역 시절 입었을 때와 다르지 않다. 아까 사인회를 했다. 종종 경기 전 행사에 참석하곤 했는데 당시와 느낌이 다르지 않았다. 팬들과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음, 그리고 그 다음 영구결번 선수를 예상한다면. "박용택이 유력하다는 기사를 봤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세 번째 영구결번 선수가 다시 나올 때까지는 시간 차이는 있었으면 좋겠다. 그 다음 선수는 오지환이 됐으면 좋겠다. 군대를 잘 다녀와서 팀을 이끄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은퇴식 전에 비가 많이 왔다.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이다. 오늘 꼭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구자로 나섰다. "7000번 넘게 타석에 나섰다. 처음으로 마운드에 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대신 아들 승민이가 타석에 서게 됐다. 의미가 크다."
-9월 9일에 행사가 진행돼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등번호 9번에 걸맞은 날짜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구단 관계자와 팬들이 먼저 얘기하셨다. 하지만 그때는 팀의 순위 경쟁이 치열해질 때다.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고별사는 직접 준비했나. "주변의 도움도 받았다. 경험이 없어 너무 어려웠다. 어떻게 시작하고 끝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후배들에게 당부한 말이 있다면. "그저 미안함이 크다. 무거운 짐을 맡기고 떠나는 선배가 돼 미안하다. 단단한 모습으로 팬들이 원하는 야구를 해주길 바란다. 우승을 해주길 바란다."
-LG가 우승 공약을 하면 이행하겠는가. "말을 타고 외야에 등장하는 장면 말인가. 당연하다. 그 공약이 계속 유효하다면 하겠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현재는 해설자다. 새로운 시각에서 야구를 볼 수 있다. 야구 공부를 더 많이 할 생각이다. 시점을 장담할 수 없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지도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노려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