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식 감독이 발굴하고 이준익 감독이 성장시킨 여배우다. 영화 '동주'에 이어 '박열' 여주인공 자리까지 꿰차면서 이준익 감독의 페르소나이자 충무로의 신데렐라로 급부상했다.
경복국역에서 신연식 감독의 명함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배우로서 자신의 운명이 이렇게 흐를 줄은 몰랐다는 속내다. 하필 신연식 감독님의 눈에 띄었고, 하필 일본어를 너무 잘했으며, 하필 이준익 감독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두 편의 영화를 준비 중이었던 '우연'은 그 수혜를 톡톡히 입은 최희서(31)를 위한 '운명'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영어영문학과 출신에 5개 국어가 가능한 재원. "대기업 스펙 아니냐"는 질문에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연기에만 몰두했다. 학업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며 시원하게 답하는 솔직함까지 갖췄다.
당찬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를 만나 강단있는 열연을 펼친 최희서에 찬사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연기가 하고 싶어 자비로 연극을 올리기도 했던 과거는 가장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는 동시에 평생 품고 갈 좋은 추억이 됐다. 빵 터진 '박열'처럼 최희서 역시 꽃길을 걸을 일만 남았다.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 촬영이 힘들지는 않았나.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뻐 힘들긴 했지만 그 힘듦마저도 즐겼다. 부담감도 마찬가지다. 매 회차가 나에게는 너무 소중했고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행복했다. 매일 매일 현장에 가고 싶었다."
- 연기에 대한 갈망이 컸나. "아무래도 연극을 하긴 했지만 장편 영화는 주연작이 없었다. 한 캐릭터나 작품의 일부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거나 긴 호흡으로 촬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동주'에서는 7신이 나오는데 '박열'의 후미코는 41신이나 나온다. 어마어마한 도약이다. 조연을 하면서 주연들의 무게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이번에 다 쏟아 부었다."
- 지하철에서 신연식 감독에게 명함을 받으며 인연을 맺었다고. "그 만남이 이렇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지하철에서 대본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잘한다. 예쁘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 절실해 보였던 것 같다. 감독님께서 '오디션 보러 가세요?'라고 물어 보셨으니까. 실제로는 연극 연습실에 가는 길이었다.(웃음)"
- 자주 이용하는 코스였나. "출근길이나 다름 없었다. 두 달 동안 같은 시간대 지하철을 탔고, 타면 늘 그 대본을 봤다. 경복궁역으로 가는 매일의 내 모습이었다. 변함없이 똑같은 일상 중 하루 정말 우연찮게 감독님을 만난 것이다. '쟤 되게 열심히 한다. 왜 저렇게 열심히 할까?'라는 궁금증 때문에 명함도 주신 것 같다. 명함을 주면서 하신 말씀이 '명함 처음 주는 거예요'였다.(웃음) 진짜라고 믿고 싶다."- '동주'는 신연식 감독이 다시 연락해 출연하게 된 것인가. "프로필을 보내 달라고 하셔서 보냈고 특기에 일본어를 적었다. 몇 달 후 전화가 왔다. 그 전에 한 번 정도 만나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동주'에 대해 이야기 하시길래 '곧잘 할 수 있어요!'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 그 때의 기분은 어땠나. "사실 지하철을 타고 연습실에 가던 그 시기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연극을 올리고 싶었지만 제작지원 받는 프로그램에 선정되지 못했다. 대학로 극장도 빌리지 못해 한성대학교 입구에 있는 극장으로 마련했다. 주연배우 두 명에 연출 한 명이었다. 세 명이 80만원씩 내서 만들었다. 연기가 하고 싶어 직접 돈을 주고 있는 입장이었다."
- 결과를 알 수 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아닌가. "그 땐 '제대로 해야 연극을 본 사람들이 나를 또 찾겠구나'라는 마음 뿐이었다. 당연히 희망은 안 보였다. 60석짜리 소극장조차 꽉 채우지 못했으니까. 내 친구들이나 부모님, 몇몇 업계 사람들이 전부였다."
- '라라랜드'의 여주인공이 떠오른다. "하하. 그런가?(웃음) 근데 내 생각에 나보다는 나와 함께 연기했던 파트너가 더 '라라랜드' 주인공의 삶과 비슷한 것 같다. 그 친구야 말로 그 연극을 통해 캐스팅 디렉터에게 전화가 받았고 미드 '센스8'에 출연하게 됐으니까. 손석구라는 배우인데 연기를 정말 정말 잘하는 친구다."
- 어떻게 알게 된 배우인가. "단편영화를 하면서 알게 됐다. 2012년부터 단편영화와 연극을 함께 했고, 연기 아카데미까지 다니면서 가장 많은 작품을 찍었다. 호흡이 잘 맞는 동료다. 힘들었던 시기도, 또 주목받는 시기도 비슷해 그 우연에 신기해 하고 있다. 더 잘 될 배우다."
- 프로필을 보면서 '이건 대기업 스펙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왜 연기를 시작했나.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어 마음 속으로만 간직해 오다가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다. 학창시절에는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고 좋아 열심히 했던건데 대학생이 되니까 다시 연기가 하고 싶어지더라. 원래 자퇴하고 영국에 있는 드라마스쿨에 가려다 휴학만 1년 반 했다.(웃음)"
- 연극을 하면서 힘들 때 전공을 살려 다른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단 한 번도 없었다. 한 번이라도 있었으면 시도라고 해 봤을텐데 아니었다. 이건 교수님들께 좀 죄송한데 사실 전공 교수님들은 누구였는지 생각도 안 난다. 오로지 연극만 했다. 생각해 보니 성적도 안 좋아 전공을 살려 일할 수도 없었을 것 같다.(웃음)"
- 현재 소속사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지금 소속사 대표님이 과거 전지현 씨와 함께 일했다. 4년 전쯤 1인 기획사 이사님이었던 시절 만나 미팅을 했는데 그 땐 영입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3년 후 다시 연락을 주셨다. '동주' 촬영 땐 연출팀 막내처럼 카니발 타고 다니고 그랬다."
- 차기작 계획은 어떤가.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시나리오만 좋다면 무조건 다 도전해 보고 싶다. 드라마도 상관없고 독립영화도 상관없다. 다음엔 한국인 역할로 한국말 쓰면서 찾아 뵙겠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