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로축구 퀸즈파크 레인저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전통과 실력을 가진 빅클럽이 꿈이었다. 2011년 프리미어리그(1부리그)로 승격한 퀸즈파크는 빅클럽이 되기 위한 첫 걸음으로 대대적인 전력 보강에 나섰다. 그 결과 퀸즈파크는 맨유에서 뛰던 박지성을 비롯해 훌리오 세자르, 앤디 존슨, 지브릴 시세, 호세 보싱와, 바비 자모라, 숀 라이트 필립스 등 실력있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공격적인 투자를 한 퀸즈파크는 2011~2012시즌 리그 17위, 2012~2013시즌 20위로 떨어져 챔피언십(2부리그)으로 강등됐다. 단기간 내 성과를 보지 못한 퀸즈파크는 그동안 공들여 영입한 선수 대부분을 이적시켰다. 재정적으로 어렵지 않았지만 이후부턴 지갑을 닫고 몸값이 낮은 선수 위주로 팀을 운영했다. 현재 퀸즈파크는 2부를 맴돌고 있다. 한때 정상을 바로보던 팀은 시쳇말로 '3류'로 전락한 것이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제주 유나이티드는 '한국의 퀸즈파크'로 불릴만 하다.
지난 시즌 '깜짝 3위'를 달성한 제주는 빅클럽으로 올라서겠다며 '폭풍 영입'을 펼쳤다. 퀸즈파크가 그랬듯 조용형을 비롯해 박진포, 김원일, 이창근 등 리그 정상급 선수들을 쓸어담았다. 전북 현대와 FC 서울 등 빅클럽을 제치고 겨울 이적시장을 주도한 것이다. 그러면서 2017년 목표를 당차게 '트레블(정규리그·FA컵·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고 내걸었다. 홈팬들은 제주의 변화에 감격 박수를 보냈다. 2006년 창단한 제주는 리그 우승 한 번 없이 상당 기간을 9~13위권만 오간 '만년 하위권'이었다.
그런데 요란했던 제주의 전폭적인 지원은 시즌이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끝났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5월 31일)과 FA컵 16강(6월 6일)에서 동시에 탈락하면서부터 제주는 돌변했다. 최근 2년간 공격의 핵심 선수로 활약한 브라질 골잡이 마르셀로(오미야)와 국가대표 공격수 황일수(옌볜)를 연달아 이적시켰다. 설상가상으로 '제주의 미래'로 불리는 국가대표 미드필더 이창민마저 중동 리그로 이적할 전망이다. 이창민은 12일 전북 현대전(2-1승)서 결승골을 넣은 인물이다.
퀸즈파크는 2시즌을 기다렸지만, 제주는 시즌 개막 뒤 불과 4개월 만에 빅클럽이 되길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축구인들 사이에서는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진 것치고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러다 돈 되는 선수들은 다 팔아치우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다.
이적이 있으면 영입이 있어야 팀의 균형이 유지된다. 하지만 제주가 현재까지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보강한 즉시 전력감은 6개월 임대 뒤 군에 입대하는 미드필더 윤빛가람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제주는 추가 영입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떠나보낸 선수들 이적료를 더 받지 못해 아쉬움을 토로한 관계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팀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선수가 차례로 빠지면서 제주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제주는 시즌 초반 선두를 달렸지만 현재는 리그 6위까지 떨어졌다. 우승은 커녕 스플릿 라운드 상위그룹(1~6위) 진입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최근 7경기에서 가까스로 2승(2무3패)만 건진 제주는 경쟁팀 선수들 사이에서는 '승점자판기'로 불리기도 한다. 일부 제주 팬들은 이런 구단을 향해 "보강도 잘 안하고 의지도 없고 선수가 남기고 간 금액으로 적자 폭만 줄이려는건지" "리그 우승하려면 선수 영입은 없어도 이적은 안 되는데…"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번 이적시장서 떠난 선수들의 공백을 메우지 않는 한 제주의 분위기 반전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