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 업계 '맏형' 격인 현대·기아차가 크게 휘청이고 있다. 내수 판매량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도 깊은 부진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잇따른 부진에 일각에서는 현대·기아차의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 쇼크 이어 미국 판매도 ‘뚝’ 1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현대차와 기아차는 중국에서 불과 3만5000여 대, 1만7000여 대를 팔았다. 현대·기아차 전체로는 5만2000대로 작년 6월과 비교해 63% 급감한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보복'이 본격화한 지난 3월부터 줄곧 전년 대비 50% 이상의 판매 감소율을 보여 왔다.
지난 3월에는 52.2%가 줄었고, 4월 65.1%, 5월 65.1%, 6월 63%의 감소율을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감소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현대·기아차가 올해 중국 시장 판매 목표로 잡은 195만대(현대차 125만대, 기아차 70만대) 달성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두 번째로 큰 시장인 미국에서도 힘을 잃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미국에서 5만4507대를 팔아 지난해 동월보다 판매량이 19.3% 나 급감했다. 기아차도 지난달 총 5만6143대를 팔아 10% 이상 줄었다. 현대·기아차 전체로는 11만여 대가 팔려 15%가량 줄었다. 이로써 상반기 현대·기아차의 총 판매량은 64만2096대로 작년보다 8.6%가 감소했다.
업계는 현대·기아차의 미국시장 부진의 원인으로 주력 모델이 오래됐다는 점을 꼽고 있다. 여기에 플릿 판매 축소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플릿 판매는 관공서와 기업, 렌터카업체 등을 대상으로 대량 판매하는 방식이다. 할인 폭이 크고 승용 판매가 주를 이뤄 수익성이 낮다. 때문에 현대·기아차는 올해 상반기 미국 내 플릿 판매를 각각 전년 대비 30%, 20% 줄였다.
주요 시장이 흔들리면서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업계 순위 역시 추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시장분석업체 '자토다이내믹스'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지난 5월 전 세계 자동차 판매대수(52만5790대)가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하며 6위로 내려앉았다. 이에 비해 포드자동차는 같은 기간 판매량을 8% 늘리면서 5위(54만9012대)로 점프했다.
내수부진에 노조 파업까지 문제는 현대·기아차의 '텃밭'인 국내 사정 역시 나쁘다는 데 있다. 상반기 극심한 내수 침체에 빠진 가운데 노사 갈등으로 인한 향후 전망 역시 어두운 상태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6일 '20차 임단협 교섭'에서 결렬을 선언했다. 이후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조정신청을 해 사실상 파업 수순에 돌입한 상태다.
만약 중노위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고,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으면 노조는 파업권을 확보하게 된다.
노조는 지난 11일 울산공장 문화회관에서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쟁의발생을 결의하고 쟁의대책위원회를 구성, 13~14일 전체 조합원 4만9,000여명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하기로 했다.
올해까지 파업할 경우 현대차 노조는 2012년 이후 6년 연속 파업을 기록한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 교섭에서 임금 15만4883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 순이익 30%(우리사주포함)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기아차 노조도 지난달 30일 파업 준비를 위한 쟁의 발생을 결의하고 지난 3일 중노위에 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달 29일 사측의 통상임금 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노조는 총액임금을 더 늘려야 한다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입장에서는 상반기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노조 파업까지 겹칠 경우 하반기 실적회복에 애를 먹을 수 밖에 없다.
현대차는 올 상반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2% 감소한 219만8342대를 판매했다. 기아차 역시 올 상반기 누적판매가 9.4% 감소한 132만224대를 기록했다.
현대·기아차는 하반기 코나·스토닉 등 지속적으로 신차를 투입하며 실적 만회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노조가 파업에 나설 경우 만회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올 하반기 코나와 스팅어 등 신차를 앞세워 실적 반등을 노린다는 계획이지만, 글로벌 최대 시장으로 꼽히는 중국에서의 부진과 미국에서의 점유율 감소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재해 있다"며 "올해 판매목표인 825만대는 물론 800만대도 넘기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