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혹은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 명언은 올해 전반기에도 변함없이 유효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승부가 펼쳐졌고, 팬들은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나올 때까지 손에 땀을 쥐었다.
일간스포츠는 10개 구단 감독에게 올 시즌 전반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물었다. 모든 감독이 고심 끝에 한 경기씩 골랐다. 에이스와 4번 타자가 위력을 발휘한 경기, 힘찬 출발을 알리는 시즌 첫 승리, 경기 막판 승부를 뒤집은 짜릿한 역전극이 골고루 포함됐다. 시점도, 경기 내용도, 상대팀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10명의 사령탑이 뽑은 10개의 경기엔 유일하고도 당연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긴 경기'다. 역시 승부의 세계에선 승리만큼 달콤한 열매가 없다.
▶KIA=5월 13일 인천 SK전 5-3 승리
1회부터 3점을 빼앗겼다. 7회까지 0-3으로 끌려갔다. 8회 대타 나지완의 적시 2루타로 간신히 한 점을 뽑았다. 그러나 9회 모든 게 달라졌다. 1사 1루서 4번 타자 최형우가 우월 동점 2점포를 날렸다. 이어진 연장전. 11회에 다시 해결사가 나타났다. 또 최형우였다. 연타석으로 역전 결승 2점포를 터트렸다. 두 번 모두 안치홍이 출루하고 최형우가 담장을 넘겼다. KIA 투수들은 2회부터 11회까지 단 한 점도 주지 않고 역전승의 발판을 놓았다.
"올 시즌 처음으로 3연패에 빠진 뒤였다. 자칫 연패가 길어질 위기였다. 질 뻔했던 경기를 힘으로 버텨 끝내 역전승까지 해냈다. 우리 선수들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김기태 감독)
▶NC=6월 21일 인천 SK전 2-1 승리
9회초까지 2-0. 선발 투수 에릭 해커는 9회말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완봉승이 눈앞이었다. 그런데 2사 1루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나주환과 대타 정의윤에게 연속 안타를 맞았다. 1실점. 일단 완봉승이 날아갔다. 그래도 완투승은 가능했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한 개였다. 다음 타자 박정권의 타구가 내야 위로 높이 떴다.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는 타구 같았다. 해커가 "내가 잡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못 잡았다. 공이 그라운드로 떨어졌다. 2사 만루가 됐다. 김경문 감독은 움직이지 않았다. 에이스에게 모든 걸 맡겼다. 해커는 SK 마지막 타자 이성우에게 공 11개를 던졌다. 결과는 유격수 땅볼. 그렇게 해커와 NC가 이겼다.
"에이스 해커가 1점 차였던 9회 2사 후 뜬공을 놓치면서도 마지막까지 완투했다. 그 역투로 승리할 수 있었다."(김경문 감독)
▶SK=4월 8일 인천 NC전 9-2 승리
개막 6연패. 야심차게 외국인 감독을 영입한 SK에게는 예상치 못한 시련이었다. 결국 해결사가 나섰다. 부동의 간판 타자 최정이다. 그는 이날 시즌 2·3·4·5호 홈런을 한꺼번에 다 쳤다. 한 경기 4홈런. 여기에 한동민과 김동엽도 홈런 하나씩을 보탰다. 그날 홈런 6개를 합작한 세 타자는 지금 리그 홈런 1위와 2위, 6위에 차례로 올라 있다. SK가 자랑하는 '홈런 군단'의 상징적인 출격이었다.
"개막 6연패로 힘든 시기였지만 선수단이 포기하지 않고 좋은 분위기를 유지해 승리를 만들어냈다. 또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거둔 정규시즌 승리라 기억에 남는다."(트레이 힐만 감독)
▶넥센=4월 7일 잠실 두산전 7-3 승리
넥센도 개막 5연패로 불안하게 출발했다. 오래 기다린 시즌 첫 승리의 갈증이 이 경기에서 풀렸다. 에이스 앤디 밴 헤켄이 6⅓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고, 주장 서건창이 팀 창단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장정석 신임 감독은 프로 사령탑으로서 첫 승을 신고했다. 넥센은 이 경기부터 5연승을 달려 승률을 5할로 끌어올렸다.
"개막 5연패로 팀이 침체된 상황에서 주장이 사이클링 히트 기록을 세우고 에이스가 잘 던져 값진 승리를 따냈다. 나 개인적으로도 첫 승이었고, 올해 우리 팀의 출발점이라 더 의미가 있다."(장정석 감독)
▶두산=5월 25일 잠실 LG전 9-7 승리
6회까지 3-7로 뒤졌다. 그러나 7회 한꺼번에 5점을 뽑아 역전했다. 1사 만루서 최주환의 희생플라이로 한 점을 따라잡았고, 이어진 2사 1·2루서 닉 에반스가 큼직한 동점 3점홈런을 작렬했다. 내친 김에 곧바로 균형을 깼다. 김재환이 연속 타자 홈런으로 역전 결승 아치를 그렸다. 완벽한 역전승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7연승이었다.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중해 7연승을 이어갈 수 있었다. 중심 타선이 잘해줬고, 수비 집중력도 좋았다. 여러모로 두산다운 야구를 보여줬던 경기였다."(김태형 감독)
▶LG=3월 31일 고척 넥센전 2-1 승리
대망의 시즌 첫 경기. 상대 선발은 지난 3년간 LG에 강했던 밴 헤켄이었다. 그러나 2회 먼저 선취점을 뽑아 기선을 제압했다. 3회엔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이형종이 올 시즌 팀 첫 홈런을 터트려 추가점을 냈다. 헨리 소사는 6⅓이닝 1실점으로 잘 던졌고, 불펜은 남은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1점 리드를 지켰다.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시즌 첫 경기가 무척 중요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잘 해줘서 승리를 거뒀다."(양상문 감독)
▶롯데=6월 27일 사직 LG전 11-10 승리
무박 2일, 5시간 38분, 투수 16명. 이날 혈투를 상징하는 흔적들이다. 롯데는 5-5로 시작한 연장 10회초 LG 이천웅에게 만루 홈런을 맞았다. 한꺼번에 5실점. 기세가 넘어갔다. 그러나 이어진 10회말 기적같은 동점을 만들었다. 7-10까지 쫓아간 무사 만루서 김문호가 동점 싹쓸이 3타점 적시타를 쳤다. 다시 10-10. 원점에서 승부가 계속되는 사이 날짜는 28일로 바뀌었다. 연장 12회말 1사 1·2루서 전준우가 짧은 중전 안타를 쳤다. LG 중견수 안익훈이 이 타구를 뒤로 빠뜨렸다. 3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경기가 결국 끝났다. 두 팀은 다음 날도 연장 12회까지 맞섰다. 결과는 무승부. 하늘은 두 팀의 휴식을 위해 3연전 마지막날 비를 쏟아부었다.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을 통틀어 처음 경험하는 경기였다.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희열을 감출 수 없었다. 그날 LG전은 그런 경기였다."(조원우 감독)
▶한화=6월 22일 대전 넥센전 13-12 승리
6회까지 7-12로 끌려갔다. 그러나 7회부터 본격적인 홈런쇼가 막을 올렸다. 하주석이 7회 2점포를 터트리면서 점수차를 좁혔다. 8회 2사 1·2루서는 시즌 도중 트레이드로 합류한 최재훈이 동점 3점포를 쏘아 올렸다. 한화 이적 후 첫 아치가 가장 극적인 순간에 나왔다. 승리의 피날레도 역시 홈런으로 장식했다. 연장 10회 이성열이 데뷔 후 처음으로 끝내기 홈런을 날렸다. 13득점 가운데 9점을 홈런으로 뽑았다. 한화는 3년 1개월 만에 처음으로 넥센전 위닝 시리즈(3연전 기준)에 성공했다.
"넥센은 타격이 좋고 불펜진도 준수한 팀이다. 이런 팀을 상대로 경기 후반 큰 점수차를 극복하고 역전승을 일궈냈다. 우리 팀 특유의 근성이 돋보인 경기였다."(이상군 감독대행)
▶삼성=5월 2일 대구 두산전 6-5 승리
2-2로 맞선 8회 3점을 내줬다. 그러나 9회 2사 1·2루서 주장 김상수가 적시타로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뒤이어 박해민이 5-5 동점을 만드는 2타점 적시 3루타를 때렸다. 짙어졌던 패색을 지우고 다음 이닝으로 기회를 연장했다. 승리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연장 10회 1사 후 타석에 선 외국인 타자 다린 러프는 팀이 그토록 기다렸던 홈런 한 방으로 경기를 끝냈다. 4월까지 역대 최악의 부진에 시달렸던 삼성이 모처럼 뒷심과 저력을 보여줬다.
"9회말 극적으로 동점을 이뤘고, 타격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갔던 러프가 1군 복귀 첫 날부터 크게 한 건 했다. 러프 개인에게나 팀에게나 이날 경기는 분명히 좋은 계기가 됐다."(김한수 감독)
▶kt=3월 31일 인천 SK전 3-2 승리
상대 에이스 메릴 켈리를 상대로 1회부터 먼저 점수를 냈다. 4번 타자 유한준이 kt의 시즌 첫 적시타를 쳤다. 2회와 4회에는 추가 득점이 연이어 나왔다. 선발 투수 돈 로치는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다. 새 소방수 김재윤을 포함한 불펜진이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한 승리. 새 감독과 함께 새 출발한 kt의 시즌 첫 경기는 이렇게 희망적이었다.
"승운도 따라준 경기였다. 투수진은 힘이 넘쳤고, 야수들도 꼭 필요한 점수를 올렸다. 시범경기 1위의 좋은 기운을 이어갔다. 지금도 그렇게 게임을 풀어가면 좋을 텐데…."(김진욱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