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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616. 깨달음 중독
후암 선원에 면담을 신청한 분들 중 많은 수가 직간접적으로 중독에 시달리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주로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 중장년층 이상은 알코올 마약 도박 니코틴 중독으로 고통받고 있다.
무엇이든 한쪽에 집착하면 중독자라고 한다. 중독은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더 나아가 가족, 타인들의 삶까지 피폐하게 만든다. 중독이 심화되면 범죄와 직결될 수도 있다. 교도소 수감자들 중에서 중독자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와는 또 다른 종류의 중독자들도 있다. 정치에 중독된 정치꾼들이다. 아무래도 영 능력자이다 보니 정치꾼들이 많이 찾아온다. 다음 선거에 나가면 국회의원에 당선되겠냐는 어려운 질문을 한다. 그럴 때는 절대 ‘된다, 안 된다’를 말하지 않는다. 나의 대답과는 상관없이 그들은 반드시 선거에 나가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중독자들도 있다. 종교 중독자들이다. 내 종교만 맞고 다른 종교는 모두 사악하다고 믿는 그들은 극단적인 범죄도 서슴지 않는다. 이슬람교 코란의 가르침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반드시 실행한다.
유럽과 중동을 초토화시켰던 십자군 전쟁은 참혹했다. 타 종교인들은 닥치는 대로 대량 학살했다.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였으며 종교 지도자들은 가장 참혹한 방법으로 처형시켰다. 현재까지도 종교의 이름으로 각종 테러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모든 중독자들 중 가장 무서운 중독이 있다. 바로 깨달음에 대한 중독이다. 내게는 많은 종교를 섭렵한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 그들은 깨달음을 찾아서 정처 없이 방황하는 깨달음 중독자들이다. 오직 깨닫기 위해 이 책, 저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왔다. 한데 깨달음에 대한 갈증은 더해만 갔다.
그렇게 깨달음에 대한 갈증이 몹시 심한 청년이 찾아왔다. 그는 도 공부를 하고 싶다며 시간만 나면 전국의 종교인들을 만나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고. 그에게 깨달음은 삶의 희망이었다. 나는 그에게 진묵대사 얘기를 해 줬다.
“참선이나 도 공부를 조용한 곳에서만 하는 줄 알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이 그런 장소 아닌 곳이 없습니다. 진묵대사는 시끌벅적하고 냄새가 진동하는 시장 바닥 생선가게 앞에서 참선을 했습니다. 시끄러움과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삼매에 들고서는 ‘오늘 장을 잘 보았다’ 했습니다.”
깨달음이란 장소나 사람으로 인해 얻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에 느끼는 마음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파랑새와도 같다 할 수 있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주변이 깨달음의 장소라는 것. 물고기가 물속에 있으면 목마르다 하는 것처럼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깨달음의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고 도를 깨닫는 게 아니다. 오히려 열심히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 도를 깨우칠 수 있다. 고생은 끝났다고 생각할 때 또 다른 고생이 생겨난다. 이 세상에 마장 없는 도 공부가 어디 있을까. 내 안에 있는 깨달음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마음 한 생각 바꿀 줄 안다면 도 공부도 멀리 있지 않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