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을 이끌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이 말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는 명언 중 하나다.
길었던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떠나는 자리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 맥아더 장군의 이 말은 우리가 흔히 쓰는 "노장은 죽지 않는다"라는 표현으로도 자주 인용된다. 주로 전성기를 훌쩍 지난 선수들이 한창 때인 젊은 선수들 못지않은 플레이를 선보일 때, 말 그대로 '베테랑'의 귀감을 보일 때 차용하는 문구다.
육체적으로 스스로를 한계에 내모는 운동선수들의 직업 수명은 대단히 짧다. 사회적으로 한창일 나이인 30대만 되더라도 스포츠에서는 노장 반열에 드는 경우가 태반이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 돌입하면서 스포츠의 직업 수명도 상대적으로 늘어났다곤 하지만, 여전히 운동선수들은 사회적으로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다. 스포츠계의 노장들은 그렇게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요새 노장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노장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라고 고쳐 얘기해야 할 것 같다. '노장'이라는 이름을 무색게 하는 자기 관리와 도전 정신으로 맹활약 중인 선수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 '한계와 도전' 마린보이가 보여 준 의지
'마린보이' 박태환(28·인천시청)의 세계 무대 도전은 '노 메달'로 끝났다. 하지만 어느덧 '노장' 반열에 든 박태환이 보여 준 역영은 끝나지 않는 도전의 메시지를 전해 줬다.
박태환은 26일(한국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아레나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 1분47초11로 터치패드를 찍으며 최하위인 8위로 레이스를 마무리했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메달을 기대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박태환은 전날 준결승에서 올 시즌 자신의 최고 기록인 1분46초28을 기록하고도 전체 8위로 결승에 진출했다. 말 그대로 '턱걸이' 결승행이었다. 결승에 올라서도 불리한 8번 레인에서 고군분투했으나 순위를 끌어올리진 못했다. 선수 생명이 짧은 수영이란 종목의 특성상, 30대를 앞둔 '노장' 박태환의 레이스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수영은 체력적인 조건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 종목이다. 예전에 비해 선수 생명이 길어졌다곤 해도 30대에 접어들면 은퇴하는 선수가 대부분이다. 1989년생인 박태환이 노장 소리를 듣는 이유다. 실제로 그는 이날 결승에 오른 8명의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였다. 사흘 내내 경기를 펼치느라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달한 상태였고, 10대 후반과 20대 초중반의 어린 선수들과 경쟁하기엔 힘이 부쳐 보였다. 박태환 역시 경기를 마친 뒤 "정말 힘들었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순위와 별개로 자유형 200m에 이어 자유형 400m까지 결승에 오른 박태환의 저력과 의지는 대단했다. 약물 파동으로 인해 선수 인생에 큰 부침을 겪고도 포기하지 않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출전했던 그는 30대를 목전에 둔 선수 생활 황혼기에 세계선수권대회에 도전했다. 다가올 2020 도쿄올림픽 출전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그가 보여 준 도전 정신이라면 '노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축구도 테니스도… 빛나는 노장들의 활약
'노장'이라는 단어에는 양면성이 있다. 흔히 생각하는 '노장'은 나이가 많아 체력적인 면에서 뒤처지는 선수들을 얘기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경험과 관록, 여유를 갖춘 베테랑 선수들도 노장의 영역에 포함된다. 다양한 종목에서 활약하고 있는 노장 선수들의 모습이 이를 뒷받침한다.
프로축구 K리그를 대표하는 빛나는 '노장'은 역시 전북 현대의 정신적 지주 이동국(38)이다. 어느덧 불혹에 가까운 나이가 됐지만 이동국은 여전히 K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공격수 중 한 명이다. 지난 2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 K리그 클래식 23라운드 경기서는 팀의 2-1 승리를 이끄는 골을 터뜨리며 신태용(47)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앞에서 보란 듯이 눈도장을 찍었다.
올 시즌 초반 부상을 당했고 이후 복귀해서도 출전 시간이 줄어들어 벤치에서 시작할 때가 태반이지만 그라운드에 나설 때마다 이동국의 존재감은 강렬하다. 적은 출전 시간에도 골과 팀 승리를 돕는 이타적인 플레이로 최강희(58) 감독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고 어느새 통산 200호 골에도 4골만 남겨 놓고 있다.
강한 체력이 필요하기에 수영 못지않게 선수 생명이 짧은 편인 테니스에서도 '노장'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남자 프로테니스의 로저 페더러(36·스위스)는 8번째 윔블던 우승, 19번째 그랜드슬램 우승, 무실세트를 기록하며 윔블던의 역사가 됐다. 여자 역시 37세의 '노장' 비너스 윌리엄스(미국)가 변함없는 기량으로 대회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사라지기를 거부한' 노장들의 활약이 전 세계의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