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외야 주전 경쟁에 백창수(30)가 가세했다. 데뷔 8년 만에 1군 무대에서 강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한 시즌에도 수많은 선수들이 잠시 1군에 머물다가 사라진다. 백창수도 지난해까지 그랬다. 뛰어난 타격 능력에 비해 수비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했지만 큰 발전이 없었다. 2014년엔 1군에서 51경기에 출전했다. 2015년엔 25경기에서 타율 0.323를 기록했다. 하지만 '반쪽 선수'가 1군에서 자리를 지킬 순 없었다.
올해는 기회를 잡았다. LG는 지난 5월 29일 이형종, 정성훈, 유강남 등 주전 선수를 대거 2군으로 내렸다. 이전 5경기에서 전패를 당하며 처진 분위기를 쇄신하려 했다. 백창수는 이때 올라왔다. 일시적인 대안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반전을 보여 줬다. 교체 출장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6월 7일 kt전에선 9회초 결승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7월부터는 선발 출전이 많아졌다. 매년 붙박이 1번 타자 부재에 시달리는 타선에 대안이 됐다. 올 시즌 29경기에서 기록한 타율은 0.386. 전반기 히트 상품인 이형종에 버금가는 '깜짝 활약'이다. 수비도 아직까진 무난하다. 지난 23일 삼성전에서 상대 투수의 공에 맞아 왼발가락에 타박상을 입었다. 이후 출전 수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컨디션 관리를 받을만큼 팀에서 중요한 전력으로 평가된다. LG는 지난 27일 경기 전 지난해 주전 우익수 채은성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백창수가 한 자리를 꿰차면서 부진한 선수에게 컨디션을 관리할 시간을 줄 수 있었다.
백창수와 얘기를 나눴다. 절실한 선수였다. 몇 경기 선전에 결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나는 당장 내일이라도 2군에 내려갈 수 있는 선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리를 지키고 싶다. 항상 힘을 준 아내에게도 보답하고 싶다. 매일 "오늘만이라도 잘하자"는 다짐으로 타석에 선다.
- 지난 23일 삼성전에서 타박상을 입었다.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현재 몸 상태는 괜찮다. 결장을 통해 의미 있는 시간을 갖고 있다. 나는 자리 보존을 장담할 수 없는 선수 아닌가. 불안한 마음에 다시 경기에 나갈 순간을 계속 머릿속에 그렸다. 1군에 올라온 뒤 내가 그동안 보여 준 경기력이 어땠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 그동안 1군에선 성적이 안 좋았다. 올해는 무엇이 달라졌나.
"기술적인 변화는 없다. 나는 내 스윙 자세를 고수하는 편이다. 2군에서 지도를 받은 신경식 타격코치님과 서용빈 1군 타격코치님이 모두 존중해 준다. 문제가 생겼을 때만 짚어 준다. 큰 틀에서 변화를 주지 않고 쌓아온 스윙 메커니즘이 통하기 시작했다. 양상문 감독님이 '간결해졌다'고 평가해 주셔서 뿌듯했다."
- 가장 큰 효과를 얻은 조언이 있다면.
"타석에서의 결과는 결국 투수와의 타이밍 싸움에서 갈린다. 성적이 안 좋을 땐 여지없이 타이밍이 늦었다. 나는 1군 경험이 적은 선수다. 서용빈, 손인호 코치님이 타이밍 싸움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많이 해 준다. 타석에서도 타이밍을 맞추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결과도 따라오고 있다."
- 1군에 콜업된 직후엔 주로 교체 출장을 했다. 그때도 타격감이 좋았다.
"나는 1군에 올라와도 주로 벤치에서 대기하던 선수다. 그래서 항상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많지 않은 기회에서 팀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야 했다. 경기 전 훈련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 투수와의 승부를 그린다. 구체적으로 특정 선수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 효과를 본 것 같다."
- LG의 리빌딩 기조는 동기 부여가 되던가.
"솔직히 말하면 '내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진 않았다. 지난해는 세대교체 주자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2군 선수들의 목표는 한 가지다. 자신의 장점을 어필해 1군에서 뛸 기회를 얻을 생각만 한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장점인 타격 능력을 보여 주고, 약점인 수비력을 보완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했다. 다행히 2군 코칭스태프가 잘 알아주신 것 같다."
- LG는 매년 1번 타자가 고민이다. 대안이 됐다.
"솔직히 타순에 따라 다른 지향점을 갖고 타격을 하진 않는다. 2회초에 나서는 첫 번째 타자도 리드오프 아닌가. 리드오프라는 단어에 연연하면 부담만 커질 것 같다. 새 외인 타자가 합류하면서 타순도 변동됐다. 어떤 타순에 나간다 해도 안타와 출루를 노린다."
- 전반기 LG 히트 상품은 이형종이다. 배턴을 이어받았다는 평가다.
"프로 무대 데뷔 뒤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정말 감사하다. 1군에서 뛰면 많은 관중 속에서 경기를 할 수 있다. 재미있다. 그래서 오래 남아 있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여전히 여유는 없다. 그저 '오늘만 잘하자'는 생각이다. 매 경기가 그렇다. 나는 오늘 못하면 내일 2군으로 갈 수 있는 선수다."
- 그동안 기회를 얻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프로는 수비력이 정말 중요하다. 나는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환했다. 수비 자신감이 떨어지니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타격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 선발 출장 기회가 많아졌다. 수비는 어떤가.
"그래도 예전보다 나아졌다. 당장 6월보다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는 마음속으로 '나에게 공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향후 보완점도 수비인가.
"당연하다. 타율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떨어져도 다시 올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졌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는 실전 경기에서 안정감을 보여 줘야 한다. 군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그래서 매 경기가 시험대다. 높은 타율을 유지하고 있어도 항상 긴장된다."
- 남은 시즌 목표가 있다면.
"콜업된 뒤 가장 오래 1군에 머문 기간이 86일에 불과하다. 2014년이었다. 올해는 팀의 마지막 경기까지 1군에 머물고 싶다. 내가 테이블 세터로 나서면서 포스트시즌까지 진출하는 게 가장 행복한 시나리오다. 아직 1군 선수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경기장에서는 욕심을 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