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기자회견에는 서혜진 변호사를 비롯해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채윤희 여성영화인모임 대표, 안병호 영화노조 위원장,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운영위원, 김미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등이 참석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여배우A와 김기덕 감독의 사건 본질을 명확히 따지면서 "영화계 내에서 연출이나 연기 또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끊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김기덕 감독과 여배우A 사이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 것.
또 "여배우A의 신상털기 등 큰 용기를 낸 피해자를 공격하는 이야기들을 생산하고 퍼트리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며 "무분별한 루머와 악성댓글 등이 퍼질 경우 강경한 법적대응을 할 것이다"고 덧붙여 뿌리깊은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 얼굴감춘 여배우A, 왜 4년이 필요했나 여배우A 측 변호사는 "고소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굳이 묵힐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신고할 용기를 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장애가 있었다"며 "그렇다고 이번 고소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4년간 A는 여성단체들과 변호사들을 찾아 다니며 자문을 구했다"고 설명했다.
여배우A는 2013년 3월 2일 영화 '뫼비우스' 엄마 역할로 캐스팅 됐다. 9일부터 양일간 전체 출연 분량 중 70%를 촬영했고, 그 과정에서 김기덕 감독의 폭행 및 시나리오에 없는 연기를 강요 당했다. 13일 제작사 측과 수차례 상의한 끝에 결국 하차를 결정했다.
4년 후인 2017년 1월 23일 여배우A는 영화인신문고에 사건을 접수, 신문고 측은 A와 김기덕 감독을 상대로 자체 조사를 진행했다. 심각성을 파악한 영화인들은 7월 5일 영화계·여성계·법조계로 이뤄진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 26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김기덕 감독을 강요·폭행·모욕·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4년 전 사건화를 시켰다면 물론 더 좋았을 수 있다. 여러 추측성 의혹들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계가 있는 구조 속에서 피해자들은 본인이 당한 일을 발고하기 어렵다. 보복의 두려움도 있고 그 피해를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입을 다문다. A를 비롯한 많은 피해자들이 정신적 고통만을 껴 안은 채 살아가는 이유다"고 분석했다.
▶ "대의 아래 수많은 피해자 질식" 움직이는 영화인들 영화인들은 영화계 전반에 만연한 '관행'이 뒤집어 엎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제야 움직임을 보여 부끄럽다는 반응도 내비쳤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폭행이나 강요가 발생해도 영화의 완성도와 작품성 뒤로 사라지고 감독의 연출의도라는 말에 가려지고 있다. 영화는 예술이 아니다. 영화의 가치는 사실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용기를 내 경찰에 고소 하더라도 언론에 알려지면 신상이 공개되고 순식간에 꽃뱀으로 몰리게 된다. 사건 자체와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보다 피해자가 누구인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피해자는 어디에도 알리지 못하고 혼자만 고통 받는다"고 토로했다.
박재승 찍는페미 대표는 "대의를 위해 수 많은 여성배우와 여성 영화인들이 당한 성폭력을 감춰왔다. 권위적인 제작자들의 폭력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대의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질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단언했다.
▶ 김기덕 감독 반응은? 여배우A 고소가 공론화 된 후 김기덕 감독은 4년 전 현장을 회상하며 공식입장을 통해 자신의 행동과 태도에 대해 해명했다.
이 과정에서 김기덕 감독은 '어떤 경우든 연출자 입장에서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집중하다 생긴 상황이고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다. 연출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 일로 상처를 받은 그 배우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왜 김기덕 감독은 영화 감독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 덕목을 데뷔 20년이 지나 소송을 통해서 배우게 됐을까 싶다"며 "김기덕 감독은 피해자가 상처받기 보다는 분노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수치심은 피해자의 몫이 아니라 가해자의 몫이다"고 질타했다.
여배우A 측 변호사는 "이것이 사과로 끝날 수 있는 일이냐. 반드시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사과하면 된다'는 정도로 안일하게 이 사건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다"고 비난했다.
김기덕 감독 측은 "잘못에 대한 책임은 지겠다"며 공동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 이후 추가 공식입장 발표를 논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