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힘든 부진이다. '느림의 미학' 유희관(31·두산)이 8월에 등판한 세 경기에서 무려 18점을 내줬다. 송곳 같던 제구력은 사라졌고, 주 무기 체인지업도 통하지 않고 있다.
유희관은 최근 4년(2013~2016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둔 선발 자원이다. 속구 구속은 130km대 초반에 불과하지만 홈 플레이트 가장자리에 꽂는 정확한 제구력으로 경쟁력을 갖췄다. 영리한 투구도 인정받는다. 타자의 허를 찌르는 공을 많이 구사한다.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중 2년 연속 '루킹 스트라이크 비율 1위'라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최근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3일 삼성전 4실점, 9일 한화전 7실점, 15일 롯데전 7실점을 기록했다. 원인은 제구력 난조다. 김태형 두산 감독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스트라이크존 좌우 코너에 던져야 하는데 최근엔 공이 몰린다"고 했다. 강점을 잃은 것이다. 제구가 되지 않는 130km대 속구는 배팅볼이나 다름없다.
주 무기 체인지업의 제구력과 움직임도 문제가 있었다. 최근 3년 평균 유희관의 체인지업 구사율은 28.2%다. 우타자 기준 바깥쪽 낮은 코스로 들어가는 이 공은 주로 결정구로 활용돼 헛스윙을 끌어냈다.
하지만 롯데전에선 공이 높았다. 움직임도 무뎠다. 1회초 기록한 5피안타 중 세 개가 체인지업이었다. 타자는 제구력이 흔들리는 유희관이 체인지업을 던져 타이밍을 빼앗으려는 의도를 간파했다. 공까지 높다 보니 공략이 어렵지 않았다.
일시적인 난조일 수 있다. 하지만 예년보다 높아진 시즌 피안타율(0.314)을 보면 위기가 감지된다. 일반적으로 주 무기는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돌파구로 삼을 수 있는 구종이다. 그러나 유희관은 속구와 체인지업 모두 통하지 않는다. 당연히 경기 운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유희관은 지난해 양현종(KIA), 차우찬(LG) 등 리그 대표 좌완보다 많은 승 수를 올렸다. 올 시즌 다른 투수들은 이름값을 해내고 있다. 유희관은 예년 같지 않다.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제구력 투수에게 다른 반등 요인은 없다. 정확한 제구력을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