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현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집’에 대한 욕망과 불안을 들춘‘숨바꼭질’로 데뷔해, 목소리로 사람을 홀리는 장산범 괴담을 소재로 한두 번째 장편 ‘장산범’을 선보인 허정(36) 감독.그가 꼽은, 최고의 공포·스릴러영화 여섯 편을 소개한다.
※감독|제작연도
‘나이트메어’ 시리즈 웨스 크레이븐 등 | 1984~2010 등장인물의 악몽에 등장하는 흉측한 살인마 프레디 크루거(로버트 잉글런드·재키 얼 헤일리). 허 감독이 “어렸을 때 제일 무섭게 봤던 공포영화”로 꼽는 시리즈다. “악몽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전히 꿈속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나.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모른다는 데서 오는 공포가 영화 내내 계속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꿈에 프레디가 나오면 어떡하지 떨었던 기억이 난다.”
큐어 구로사와 기요시 | 1997 “언젠가 이런 느낌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 허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본 건, 최면으로 멀쩡한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도록 한다는 설정이 자아내는 극도의 불안이다. “등장인물이 언제 최면에 걸려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것 아닌가. 그 때문에 인물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위태로운 느낌이 든다.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인 공포가 아닐까.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다.”
소름 윤종찬 | 2001 불길한 기운이 가득 찬 낡은 아파트. 택시 운전사 용현(김명민)과 남편에게 매 맞는 선영(장진영)은 자신들이 점점 더 끈질긴 운명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떤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이 자아내는 불길함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용현과 선영이 사는 아파트를 묘사한 분위기도 무척 마음에 든다.” ‘숨바꼭질’에 등장하는 낡은 아파트와 비교해 봐도 재미있을 듯.
오퍼나지-비밀의 계단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 2007 로라(벨렌 루에다)의 가족은, 과거에 고아원이었던 대저택에 이사 온다. 로라가 바로 이 고아원 출신이다. 그리고 연이어 일어나는 불길한 일들. 슬픈 원한의 이야기를 서슬 푸른 공포로 펼치는 스페인 공포영화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단순히 무섭기만 한 게 아니라, 바탕에 슬픈 드라마가 깔려 있다.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영화에 끌린다.”
렛 미 인 토마스 알프레드슨 | 2008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소설을 영화화한 스웨덴영화. 눈 덮인 블라케베리에 사는 열두 살 외톨이 소년 오스칼(셰레 헤데브란트)과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리나 레인데르손)의 사랑 이야기다. “극의 정서를 지배하는 듯한, 차가운 느낌의 미장센들이 정말 아름답다. 특히 결말을 잊을 수 없다. 해석에 따라 해피엔드로도, 그 반대로도 읽을 수 있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는 결말을 좋아한다.”
불신지옥 이용주 | 2009 열네 살 소녀(심은경)가 사라졌다. 경찰의 수사는 형식에 그치고 엄마(김보연)는 기도에만 매달린다. 사람들은 그 소녀가 신들렸다고 수군댄다. 소녀의 언니(남상미)는 꿈에 이상한 것들을 보기 시작한다. 허 감독이 이 영화를 주목하는 건 “비주얼과 연출의 세련미” 때문이다. “꿈꾸는 장면이나 접신되는 대목에서,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종교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영상이 정말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