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과거는 영광으로 남았다. 스물 두 살. 사람으로 따지면 이제 막 성인식을 치른 나이, 이것도 저것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실수와 사고도 잦다. 누군가 지적하고 호통치면 '나 다 컸는데? 나 어른인데?'라고 당당하게 대꾸도 하면서 뾰족한 마음을 드러낸다. 불신과 불만이 쌓이는 시기. 조금 일찍 철든 친구는 사회와 타협을 시도한다. '내 잘못' '내 탓'을 인정하는 것은 아이건 어른이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성장 속도는 예나 지금이나 빠르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영화제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탄탄대로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부산국제영화제가 최근 2~3년간 끊임없이 삐걱거리고 있다. 정치적 문제부터 내부 문제까지 하나하나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봉합의 움직임은 커녕 탈만 늘어나는 시간이었다. 영화계에서는 '이러다 부산국제영화제 사라지는 것 아니냐' '전주국제영화제에 힘이 더 실리는 것 같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과 애정 속에 지켜지고 있다. 싸우고 다투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하나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어떻게든 잘 꾸려 나가고 싶다는 것. 방법이 다를 뿐 마음이 다른 것은 아니다. 이에 부산국제영화제와 관련된 모든 이들은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말을 주저하지 않는다. 내부인들과 소통 실패로 공격받고 사퇴를 확정지은 강수연 집행위원장 역시 "당연한 불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단언했다.
올해도 부산국제영화제의 문은 열린다. 대부분의 영화계 단체들이 보이콧을 강행했던 지난해보다는 사정이 조금 낫다. 몇몇 단체들은 보이콧을 해제시켰기 때문. 개막작을 비롯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이는 굵직한 한국 영화들도 상당하다. 외화 역시 마찬가지다. 아시아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배우까지 부산으로 불러 들이는데 성공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부산국제영화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안 팎으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인지 확인할 수 있다.
개막작 사전 유출로 뜻하지 않은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11일 예정대로 22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을 진행, 여전히 뼈아픈 성장통의 과정에 있음을 시인했다.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내년 2월까지가 정확한 임기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를 안고 있다. 정관을 개정하는 문제부터 민간 조직위원장으로 시작한 문제, 점차 해결돼 가는 과정이다. 집행위원장으로서 이 모든 사태를 책임지고 영화제를 치러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고 토로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1년 정도 쉬었다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영화계 내 의견이 쏟아졌지만 위원장들의 결정은 확고했다. 무조건 치러져야 한다는 것. 치러내는 것은 힘들지만 휴식하는 순간 1년이 2년이 되고, 2년이 3년이 되는 것은 너무도 쉽다는 이유다. 결국 올해도 부산국제영화제는 개최된다. 영화제를 향한 불신은 모두 끌어안고 가겠다는 입장이다. 당장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산더미 같이 쌓였지만 그것이 영화제의 문을 닫는 기회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올해는 75개국에서 총 298편의 영화가 초청돼 상영된다. 개막작은 문근영 주연 '유리정원(신수원 감독)', 폐막작은 '상애상친(실비아 창 감독)'이 선정됐다. 여름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는 18분 늘어난 감독판으로 상영을 확정지었고, 홍상수 감독의 '그 후' 역시 부산에서 만날 수 있다. 각기 다른 이유로 문제작이 된 두 편의 영화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핫하게 달굴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박성웅·오승훈 '메소드(방은진 감독)', 고현정·이진욱 '호랑이보다 무서운 손님(이광국 감독)' 등도 부산에서 관객들과 첫 만남을 갖는다. 이 외 많은 영화들과 이를 함께 한 배우들이 관객과의 대화(GV)를 위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짧게나마 방문할 예정이다.
영화제는 결국 영화와 관객이 있어야 하고, 영화인들은 관객들이 있어야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 올해 많은 영화들이 관객들의 외면 속 쓴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리고 외면과 지지라는 극과 극 평가를 받은 영화들이 한데 모여 영화제라는 큰 그림을 완성한다. 과연 그 영화제는 관객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들의 응원을 얻을 수 있을지, 진정한 위로가 필요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남아있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