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구명시식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구명시식 가무단의 노력으로 새로운 형태의 구명시식이 탄생하게 됐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구명시식이 탄생하게 됐다.
이미 구명시식은 몇 번의 큰 변화가 있어 왔다. 오랫동안 노래를 담당했던 가수들은 강단에 서야 한다는 이유로 또는 개인 사정으로 그만뒀다. 인연이 다했으니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노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노래는 있다. 그리고 가무단만은 여전히 나를 튼튼하게 지켜 주고 있다.
구명시식이 시작되면 나는 한없이 외로워진다. 법당 안에 영가와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혼자다. 영가를 보고 듣고 말해야 하며 더 나아가 천도까지 시켜야 하니 보통 막중한 일이 아니다. 작년 처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을 때는 과연 구명시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올려야 했던 첫 번째 구명시식은 한없이 고독하고 막막했다. 무사히 구명시식을 마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말을 못 하게 되자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염파가 강해진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앞을 못 보는 대신 다른 감각이 발달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염파가 더욱 세졌다. 영적으로 보면 말하지 않는 게 도리어 큰 힘이 된 셈이다.
대낮의 별은 빛이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밤이 돼야 별빛이 보이는 것처럼 말을 안 하고 말을 내 안에 가두자 영적인 세계는 너무도 충만해졌다. 만약 목소리가 잘 나왔다면 이런 구명시식은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구명시식에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죽을 때까지 깨달아야 한다고, 말 없는 구명시식은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고 있다. 물론 그동안 안타까운 일도 많았다. 보이는 부분만을 보고서 내가 권위적으로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 말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자제했음에도 그렇게 보였다면 그건 내 잘못일 것이다. 현재 나는 말을 잘하고 싶어도 잘할 수 있는 건강 상태가 아니다. 하늘에서 나에게 말을 못하게끔 목소리를 가져간 이유도 권위와 독선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지난 8월 8일에는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병원에서 언어를 잘 구사할 수 없다는 진단서까지 떼어서 모 단체에 제출한 적도 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현재의 건강 상태를 공식화해서 알리게 된 것이다. 예전의 모습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목소리가 불편해진 이후로 씁쓸하고 고독할 때가 많다. 지인들과 큰소리로 웃고 떠들지도 못 하고 아무리 화가 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다. 목에 좋지 않다니 자연스레 말수도 줄어들었다. 처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을 때는 속상했지만 지금은 얼굴을 맞대고 낮은 목소리라도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늘 권위적인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는 하늘에도 감사하고 있다. 목소리가 불편해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직 곁에 있고 말 없이도 무사히 구명시식을 마칠 수 있어 다행이다. 구명시식은 목소리가 아닌 혼으로 하는 것임을 구명시식을 시작한 지 어언 30년 만에 깨닫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