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게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해 온 태릉선수촌이 '후계자'에게 바통을 넘기고 물러난다. 태릉선수촌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국가대표들의 보금자리이자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새로운 중심이 될 주인공은 오는 27일 공식 개촌식을 앞둔 진천선수촌이다.
2009년 2월 첫 삽을 뜬 이후 장장 8년에 걸친 공사 끝에 완공된 진천선수촌은 한국 체육사에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진천선수촌의 공식 개촌식까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만큼 태릉 시대에서 진천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를 살펴본다.
◇ '스포츠 강국' 한국을 만든 태릉
태릉선수촌의 역사는 1966년 6월 30일 시작됐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태릉선수촌은 근처에 문정왕후의 무덤인 '태릉'이 있어 거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진천선수촌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유일의 국립 종합 스포츠 트레이닝센터로 엘리트 스포츠의 상징과 같은 장소로 여겨졌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전문적인 체육 시설은 드물었기에 태릉선수촌의 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태릉선수촌은 1964 도쿄올림픽에서 224명의 선수단을 파견하고도 금메달 없이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에 그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합숙을 통해 선수단을 운영하면서 국제 대회 경쟁력을 기르기 위한 결정이었다. 1966년 완공돼 선수들이 입촌한 뒤 처음 치른 1968 멕시코시티올림픽 그리고 다음 대회인 1972 뮌헨올림픽에선 '태릉 효과'가 극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76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첫 금메달을 한국에 안기면서 태릉선수촌의 '금빛 행진'도 시작됐다. 1984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때는 무려 6개의 금메달(은6, 동7)이 나왔고, 안방에서 열린 1988 서울올림픽에서는 12개의 금메달, 10개의 은메달, 11개의 동메달을 수확하며 종합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단기간에 한국을 스포츠 강국으로 끌어올린 태릉선수촌의 성과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국가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한국은 태릉선수촌 설립 이후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대회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다. 태릉선수촌은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산실이자 역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태릉선수촌의 입지도 점점 바뀌어 갔다. 여전히 국가대표의 자부심을 가득 안겨 주는 공간이지만 개촌 50년을 넘긴 만큼 시설이 낙후됐고 이를 위한 개·보수 및 관리 비용도 늘어났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국제 종합 대회 종목들이 신설되고 확대되면서 수용 가능 종목과 인원에도 한계가 생겼다. 새로운 선수촌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태릉선수촌의 뒤를 이을 더 크고 더 전문적인 진천선수촌이 2009년 공사에 돌입했다.
◇ 더 커진 진천에서 새 역사를 기대한다
"단순히 선수촌을 태릉에서 진천으로 옮기는 게 아니다. 세계 최대 규모급 종합 훈련 선수촌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재근 진천선수촌장은 이번 개촌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선수촌장의 말처럼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자리 잡은 진천선수촌은 태릉선수촌과 비교하면 시설·시스템·수용 인원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다. 선수촌 조성에 투입된 예산은 5130억원에 달하고, 부지면적도 기존 태릉선수촌(31만969㎡)보다 5배가량 넓어진 159만4천870㎡다.
선수들이 사용할 숙소도 태릉선수촌(3개 동 358실)에 비해 8개 동 823실로 크게 늘어났다. 수용 종목과 인원도 총 35개 종목 1150명으로 늘어났고, 훈련 시설도 12개소에서 21개소로 많아졌다. 실내 훈련장 3곳을 비롯해 벨로드롬, 빙상장, 럭비장, 하키장 등 다양한 훈련 시설이 생기면서 럭비와 우슈, 사이클, 철인3종, 근대5종 등의 국가대표 선수들의 입촌이 가능해졌다.
공식 개촌식을 앞두고 대한체육회는 선수촌 이촌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지난 3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우선 2018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현재 태릉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아이스하키와 컬링, 쇼트트랙 등 16개 종목 선수단이 다음 달 중순부터 진천선수촌으로 시설 및 장비 이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대한체육회는 오는 11월 말까지 상기 종목들의 이촌이 완료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쉬운 점은 평창을 준비하는 겨울올림픽 종목 선수들이 진천선수촌의 시설을 100%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대부분의 겨울올림픽 종목 선수들이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 있는 상태인 데다 진천선수촌의 겨울올림픽 종목 시설이 시험 가동 중이라 선수들이 이용하기 어렵다. 현재 진천선수촌에 입촌해 있는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의 경우도 체력 단련에 중심을 두고 있다.
대신 정부와 대한체육회, 평창겨울올림픽조직위원회 및 종목 단체 등은 지난 2월 경기력 향상 지원단을 구성해 총력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 지원단은 외국인 지도자와 종목 전문가 증원을 비롯해 체계적인 경기력 분석 및 관리, 국내외 훈련 기간 확대, 특식 지원 등 종목별 맞춤형 지원을 통해 평창을 준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