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NYT)가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이 수십 년간 저질러 온 성폭력을 폭로한 지 나흘만인 9일(현지시간), 대배우인 메릴 스트립이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보도가 나오고 수일이 지났는데도 업계 주요 관계자들의 입장 표명이 없어 “침묵으로 웨인스타인을 옹호한다”는 비판이 나오던 차였다. 스트립은 이날 허핑턴포스트에 “웨인스타인에 대한 수치스러운 보도에 깜짝 놀랐다”며 “그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권력 남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폭로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용감한 여성들은 우리의 영웅”이라고 극찬했다.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듯 그는 “(그의 성폭력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스트립은 2012년 웨인스타인 컴퍼니가 미국 내 배급을 맡은 영화 ‘철의 여인’으로 아카데미·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당시 그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웨인스타인을 ‘신’이라 부르기도 했다.
스트립에 앞서 케이트 윈슬렛, 엠마 톰슨, 파트리샤 아케트, 브리 라슨, 제시카 차스테인 등 최고의 여배우들이 웨인스타인을 비판하고 피해 여성들을 지지했다. 윈슬렛은 “웨인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인지하고 있었다”며 “만들어진 루머이기를 바랬던 내가 순진해 빠졌던 것 같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남성 배우 중 입장을 밝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9일까지 마크 러팔로와 세스 로건 등 몇몇에 불과하다.
이에 영국 일간 가디언이 웨인스타인과 작업했던 남성 배우·감독과 직접 접촉했다. 10일 가디언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과 달리 영화계 주요 남성 인사들은 침묵하고 있다”며 “가디언이 20명 넘는 남성들에게 연락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모두가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취재에 응하지 않은 배우들은 벤 애플렉, 맷 데이먼, 콜린 퍼스, 브래들리 쿠퍼, 브래드 피트, 리어나도 디카프리오, 다니엘 데이 루이스, 러셀 크로우, 조지 클루니, 이완 맥그리거다. 최고로 손꼽히는 톱배우들이다. 감독 중엔 마틴 스코세지, ‘펄프픽션’의 쿠엔틴 타란티노, ‘화씨 9/11’의 마이클 무어, ‘킹스 스피치’의 톰 후퍼, ‘시카고’의 롭 마샬 등이 포함됐다. 웨인스타인이 제작·배급을 맡은 영화를 촬영해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명감독들이다. 가디언은 “할리우드 남성 배우들의 침묵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만연한 ‘미소지니(misogyny·여성혐오)’를 반영한다”며 “이들이 업계에 떠도는 루머를 다른 식으로 해석하고 무시함으로써, 웨인스타인의 폭력을 수년 간 공공연한 비밀로 남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성평등과 사회 정의에 목청 높여 왔음에도 (이번 사건에 대해선)발언하지 않고 있다”며 “이들은 웨인스타인과 유사한 트럼프 대통령의 성희롱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데이먼과 크로우의 경우 웨인스타인에 대한 언론 보도를 막으려 애섰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2004년 사건을 취재 중이던 NYT 기자에게 전화해 보도를 저지하려했다는 것이다.
가디언 보도 뒤 클루니는 뒤늦게나마 “(웨인스타인은) 변호의 여지가 없다. 20년간 그를 알았지만 행동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입장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