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시즌과 같은 단기전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경기의 흐름을 순식간에 바꾸고, 더 나아가 팀의 승패까지 좌우한다. 호수비 하나와 실책 하나가 미치는 영향력이 가을에는 몇 배로 더 커진다. 특히 투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게임에서는 더 그렇다. 점수가 많이 나오지 않는 경기일수록 야수들의 수비 집중력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슈퍼 캐치'
지난해 플레이오프 3차전이 그랬다. LG와 NC가 1-1로 맞선 8회 2사 만루서 NC 외야수 나성범이 LG 채은성의 안타성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냈다. 승기를 완전히 내줄 뻔한 위기를 벗어나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수비를 능가하는 '슈퍼 캐치'가 나왔다. LG 안익훈이 연장 11회초 2사 1·2루서 우중간을 가르는 나성범의 2루타성 타구를 환상적인 러닝캐치로 잡아냈다. 대량 실점으로 이어질 뻔했던 위기를 무사히 막았다. 죽다 살아난 LG는 다음 공격에서 결승점을 뽑아내 이겼다. 지난해 10월 2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NC의 플레이오프(PO) 3차전에서 1-1 동점이던 연장 11회 초 대수비로 투입된 LG 안익훈이 슈퍼 캐치를 선보였다. [사진=IS포토] 사실 이 경기는 양 팀 합쳐 25개의 4사구가 나온 졸전이었다. 수많은 주자가 베이스를 밟았지만, 최종 스코어는 2-1. 역대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 4사구 기록까지 경신했다. 그러나 안익훈의 호수비가 다 쓰러져가던 이 경기를 일으켜 세웠다. 양상문 LG 감독은 경기 후 "내 마음속 MVP는 안익훈"이라고 했다.
호수비는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그래서 더 쉽게 잊히기도 한다. 안익훈의 슈퍼 캐치는 플레이오프 3차전 기록지에 나성범의 '우익수 플라이'로만 표기됐다. 기록의 가치가 그 어느 스포츠보다 중요한 야구에서 "기록은 진짜 보고 싶은 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는 격언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중살의 짜릿함
박진감 넘치는 다이빙 캐치나 러닝 캐치만큼이나 손발이 척척 맞는 내야진의 더블 플레이도 짜릿한 희열을 안긴다. 심지어 아웃카운트 3개를 한꺼번에 잡아내는 플레이라면 더 그렇다. 하나의 타구로 세 명의 주자를 아웃시키는 삼중살은 역대 포스트시즌에서 단 두 차례만 나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2004년 현대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나온 트리플 플레이다. 역대 유일하게 9차전까지 치렀던 혈전 시리즈였다. 이미 8차전 개최가 결정된 상황에서 삼성과 현대는 7차전 선발로 각각 전병호와 정민태를 내세웠다. 삼성은 1회초 박한이와 김종훈의 연속 안타로 무사 1·2루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이때 양준혁이 때린 타구가 현대 1루수 이숭용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단 타자 주자가 아웃되면서 원 아웃. 이숭용은 그대로 1루를 밟아 이미 2루로 출발했던 1루 주자 김종훈을 아웃시켰다. 투 아웃. 그리고 2루로 다시 송구했다. 이미 스타트를 끊었던 2루 주자 박한이가 미처 귀루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스리아웃이 됐다.
삼성은 이 희귀한 삼중살 기록을 두 번 모두 당한 불운의 팀이었다. 2003년 SK와 준플레이오프 1차전 7회말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7회말 무사 1·3루 풀카운트에서 타자 김한수가 삼진을 당했고, 그 사이 1루 주자 양준혁이 2루로 스타트를 끊었다가 런다운에 걸려 아웃됐다. 이어 3루 주자 마해영도 그 틈을 타 홈으로 뛰어 들다가 역시 태그아웃됐다. 완벽한 작전 실패. 포스트시즌 사상 첫 삼중살이었다.
#가을에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호수비는 실점을 막는다. 반면 실책은 실점으로 연결될 때가 많다. 결정적인 호수비보다 치명적인 실책이 더 깊은 인상을 남기는 까닭이다. 한 시즌 내내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끄는 데 앞장선 선수가 한 순간의 실수로 고개를 숙이기 일쑤다. 1990년 해태와 삼성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천하의 선동열 카드마저 실책 앞에 무너졌다. 선동열은 일찌감치 몸을 풀다 0-0으로 맞선 5회 무사 2루서 마운드에 올랐다. 이강철에게 배턴을 이어 받았다. 타석에는 타격감이 한창 좋았던 김용국이 서 있었다. 김용국은 볼카운트 1-2서 포수 머리 위로 뜨는 파울플라이성 타구를 날렸다. 그러나 포수 장채근과 1루수 김성한이 서로 미루다 이 공을 놓쳤다. 위기를 넘긴 김용국은 바로 다음 공을 받아쳐 선제 결승 2점 홈런을 쳤다. 선동열의 몇 안 되는 포스트시즌 패배가 그렇게 나왔다.
2014년 넥센과 삼성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는 메이저리그급 유격수 강정호가 당했다. 시리즈 전적 2승 2패로 팽팽하게 맞선 상황. 넥센은 9회 1-0 리드를 지키기 위해 마무리 투수 손승락을 올렸다. 그러나 1사 후 나바로의 평범한 유격수 땅볼 타구를 현역 최고 유격수 강정호가 잡지 못하고 떨어뜨렸다. 이 실책은 결국 넥센의 1-2 끝내기 패배로 이어졌다. 3승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뻔했던 넥센은 6차전에서 대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역대 단 세 번뿐인 끝내기 실책의 아픔
물론 끝내기 실책은 이보다 더 뼈아프다. 역대 포스트시즌 끝내기 실책은 단 세 번 나왔다. 1998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최초였다. 두산 외국인 2루수 에드가 케세레스가 연장 10회말 1사 2루서 LG 김재현의 강한 2루수 땅볼 타구를 뒤로 빠트렸다. 팽팽하던 승부에 허무하게 종지부를 찍었다.
2015년 처음으로 도입된 와일드카드 결정전도 끝내기 실책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넥센과 SK가 4-4로 팽팽하게 맞선 연장 11회말 2사 만루. SK 구원투수 박정배는 넥센 윤석민을 유격수 플라이로 유도했다. 그러나 내야로 높이 떠오른 공을 투수, 2루수, 유격수 가운데 누구도 잡지 못했다. 결국 SK 유격수 김성현의 끝내기 실책으로 기록됐고, SK는 힘겹게 올라온 가을 잔치를 1경기 만에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