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뻗어나간 공이 왼쪽 담장을 넘어갔다. 베이스를 돌던 최주환(29·두산)은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며 홈을 향해 달려갔다. 그 뒤에선 그보다 먼저 홈을 밟은 주자 세 명이 만세를 부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승부를 뒤집는 그랜드슬램이었다.
두산 최주환은 1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NC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데일리 MVP로 선정됐다. 팀의 1승을 만든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천금 같은 역전 결승 만루포를 쏘아 올린 덕분이다. 에이스를 내세우고도 1차전을 패했던 두산은 홈에서 귀중한 1승을 건져 올렸다. 최주환의 역전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5회까지만 해도 승기는 NC 쪽으로 넘어간 듯했다. 경기 초반 펼쳐진 홈런 공방전 속에 5회 NC 나성범이 4-4 균형을 깨는 2점 홈런을 날렸다. 1차전에서 더스틴 니퍼트를 무너뜨린 NC 타선은 2차전에서도 NC전에 가장 강했던 장원준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짜 주인공은 두산에서 나왔다. 최주환이다. 두산은 6회가 시작하자마자 무사 만루 기회를 잡았다. 김재환과 오재일이 구창모에게 연속 볼넷을 얻어내 무사 1·2루를 만들었고, 양의지도 뒤이어 등판한 제프 맨쉽과 풀카운트 승부 끝에 다시 볼넷을 골랐다. 그리고 이날 7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한 최주환의 타석이 돌아왔다.
최주환은 볼카운트 1-0에서 맨쉽의 2구째 투심패스트볼(시속 145㎞)을 걷어 올렸다. 타구는 그대로 왼쪽 담장을 넘어가 역전 결승 만루홈런으로 연결됐다. 최주환이 포스트시즌 17경기 만에 때려낸 첫 홈런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화려하게 터졌다.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내는 한 방이기도 했다. 최주환은 올 시즌 전반기에 펄펄 날았다. 선발 2루수로 활약했다. 두산 타선을 빛낸 '히트 상품'으로 꼽혔다. 데뷔 후 처음으로 올스타전에도 나섰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부침을 겪었다. 주전 2루수 자리도 내줬다. 빛이 화려했던 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이날 터진 만루홈런 한 방으로 그간의 아쉬움을 털어냈다. 자칫 2패를 안고 마산으로 향할 뻔했던 팀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었다. 자신의 가치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최주환은 더 이상 만년 유망주가 아닌 당당한 가을의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