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를 결정짓는 '위닝샷' 한 방으로 고양 오리온의 짜릿한 역전승을 이끈 허일영(32)은 넉살 좋게 웃었다. 오리온은 22일 고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시즌 정관장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 맞대결에서 경기 종료 5.4초 전 터진 허일영의 결승포로 90-89, 1점 차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승리로 오리온은 지난 인천 전자랜드전에 이어 시즌 첫 2연승을 챙기며 2승3패가 됐고, 삼성은 개막전 승리 이후 3연패(1승3패)의 수렁에 빠졌다.
허일영이 터뜨린 극적인 결승포엔 1승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날 경기 전 추일승(54) 감독은 "(허)일영이 어깨에 책임감을 지고 있는 것 같다"며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고 넌지시 말했다. 추 감독의 말을 전해 들은 허일영은 "감독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다음부턴 몸에 힘을 빼고 해야겠다"며 넉살 좋게 웃었다. 하지만 그가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축 선수들이 빠지면서 팀의 중심으로 해야 할 역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2015~2016시즌 '디펜딩 챔피언'이자 지난 시즌 정규 리그 2위로 강팀이었던 오리온은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하위권으로 분류됐다. 이승현(25·상무)·장재석(26) 등이 군 입대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가드 정재홍(31), 팀의 득점을 책임지던 애런 헤인즈(36)가 서울 SK로 그리고 '해결사' 김동욱(36)이 서울 삼성으로 이적했다. 이처럼 팀을 이끌던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졌지만 마땅한 선수 보강도 없었다. 오리온의 전력이 약해졌다는 건 누가 봐도 자명한 사실처럼 보였다.
'꼴찌 후보'라는 소리에 오기가 생겼다. 더 잘해서 세간의 평가를 뒤집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겼다. 시즌 개막 전 홍천 전지훈련 때 만난 허일영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허일영은 "이 없으면 잇몸으로 해야 하는 법"이라는 말로 자신의 각오를 전했다. "(이)승현·(장)재석이 돌아올 때까지 남은 선수들로 잘 극복해 나가야 한다.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지 않나"고 되물은 그는 "우리에겐 올해가 더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일영의 말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허일영은 이날 결승포를 포함해 17득점(5리바운드)으로 활약하며 자신의 말을 증명했다. 버논 맥클린(31·23득점 9어시스트 7리바운드)·드워릭 스펜서(35·18득점) 두 외국인 선수에 이어 팀 내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다. 특히 삼성에 역전을 허용한 뒤 계속 끌려가던 상황에서 4쿼터 막판에만 연달아 6득점을 뽑아내 추격의 발판을 만들었다. 5.4초를 남기고 자신이 던진 슛이 림을 통과하는 걸 지켜본 허일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허일영의 마지막 결승포 덕분에 오리온은 2경기 연속 90득점을 기록하는 데도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