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9일 오후 1시.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고 김주혁을 만났다. tvN '아르곤'이 성공적으로 종영하며 만들어진 공식 인터뷰 자리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던진 그의 첫 마디는 "안녕하세요. 먼길 오느라 수고했어요"였다.
드라마 얘기부터 근황까지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서서히 입이 풀리자 그는 반말을 섞어가며 말을 했다. "그렇잖아" "안 그래?" "힘들겠다" 등의 말들이었다. 전혀 기분 나쁜 반말이 아니라 인간미 넘치는 반말이었다. 고 김주혁의 반말은 친근감의 표시였다. 반말이 시작되자 오히려 인터뷰의 분위기가 환해졌다.
고 김주혁은 평소 인터뷰를 많이 하는 배우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해 지난 5월 개봉한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으로 홍보 인터뷰를 하고 '아르곤' 종영 인터뷰를 가졌다. "연기에 재미를 느꼈다"는 그는 다작을 시작하면서 대중과의 스킨십을 원했다. 기자들과도 마찬가지였다.
고 김주혁은 '아르곤'에서 앵커역할을 맡았다. 기자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겠다는 그였다. 그는 "기자들을 만나는 자리가 인터뷰 밖에 없었다. 기자라는 직업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일찌감치 기자의 매력과 고충을 먼저 알았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힘들지?"라고 기자를 위로했다. 무심히 던진 말이었겠지만 따뜻한 옆집 오빠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의 연기 열정에 반할 수 밖에 없었다. 20년차 베테랑 배우지만 여전기 연기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는 하루에 30% 이상 연기 고민만 한다고 밝혔다. 쉬는 시간에도 오로지 연기 생각 뿐이었다. 연기는 끝이 없다던 그. 끝을 봤다면 내리막 밖에 없다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연기를 위해 건강도 관리하겠다는 김주혁이었다. 또한 젊은 배우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는다고도 고백했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젊은 배우를 보면 스스로 리셋하는 느낌"이라며 잠시 고뇌를 하기도 했다.
인터뷰 1시간은 '순삭'이었다. 뒤에서 소속사 관계자가 "이제 시간이 다됐습니다"라고 했을 때 '벌써'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 김주혁은 "아쉽네. 다음에 또 보자"며 악수를 청했다. 따뜻한 말과 따뜻한 손. 그게 그와의 마지막 만남일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10월 30일 그가 이 세상을 떠나고 2일 발인식을 거치며 영면에 잠겼지만 아직도 그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
연기를 사랑했던 진정한 배우 김주혁. 아버지이자 선배 배우 고 김무생의 반대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던 그. 영화처럼 살다간 그를 잊지 않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