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16일. 2007시즌 프로야구 신인 선수 2차 지명 회의가 열리던 날이다. KIA는 이날 11년 뒤에 팀의 우승을 만들어 낼 에이스를 얻었다.
KIA는 2005시즌 최하위에 그쳤다. 대신 그해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손에 넣었다. 그 권리를 망설임 없이 광주 동성고 투수 양현종에게 행사했다. 이미 청소년 야구대표팀 에이스로 발탁된 강속구 투수였다. "빠른 직구를 던지고 변화구 제구도 좋다"며 큰 기대를 걸었다.
11년이 흘렀다. 양현종은 KIA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팀의 울타리를 넘어 KBO 리그 전체에서 가장 대단한 활약을 한 선수로 인정받았다. 그는 6일 오후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 시상식'에서 총 856점 만점 가운데 656점을 얻어 MVP로 뽑혔다. 경쟁자로 꼽혔던 SK 최정과 KIA 헥터 노에시는 각각 294점과 208점을 얻었다. 격차가 큰 1위였다.
받을 선수가 받았다. 양현종은 올해 31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193⅓이닝을 소화했다. 20승6패 평균자책점 3.44를 기록했다. 팀 동료 헥터(20승5패)와 함께 20승 듀오를 이루며 정규 시즌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맹활약했다. 2차전 완봉승을 포함해 1승 1세이브를 올렸다. 한국시리즈 MVP로 뽑혔다. 정규 리그와 한국시리즈 MVP를 동시에 석권한 선수는 KBO 리그 36년 역사상 양현종이 유일하다.
'꽃길'만 걸어온 야구 인생은 아니다. 늘 '수준급 왼손 투수'로 불렸지만 '에이스' 자리에 등극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류현진(LA 다저스)이나 김광현(SK) 같은 또래 왼손 투수들이 데뷔 직후에 국가대표 에이스로 자리 잡는 동안, 양현종은 늘 '미완의 대기'로 통했다. 좀처럼 1위 자리에도 오르지 못했다. 데뷔 9년 만인 2015년에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른 게 처음으로 따낸 개인 타이틀이었을 정도다. 양현종은 "그동안 승리가 많았을 때는 평균자책점이 부족했고, 평균자책점이 좋았을 때는 승리가 부족했다. 또 다 괜찮을 때는 이닝이 부족했다"고 아쉬워했다. 절치부심했다. KIA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2009년이 계기였다. 당시에 양현종은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래도 조범현 전 KIA 감독은 끊임없이 기회를 줬다. 양현종은 "경험이 중요했다. 2~3년 차 때에 성적이 썩 좋지 않았는데도 조 감독님이 기회를 줬다"며 "정말 많이 노력했다. 원정 때는 호텔 옥상에서 밸런스를 잡는 연습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유혹도 이겨 냈다. 한밤중에 놀러 나가는 다른 선수를 애써 무시했다. 그는 "속으로 '저 선수가 밖에 나가 놀고 있을 때 나는 훈련을 하고 있다' '누가 정상에 가는지 두고 봐라'는 독기를 품었다"며 "그 노력의 대가가 왔던 것 같다"고 했다.
올해는 다르다. 완벽한 에이스로 거듭났다. 모두가 양현종을 최고 투수로 인정했다. 특급 투수의 훈장이라는 20승 고지도 밟았다. 그는 "동료인 헥터가 20승을 향해 달려가면서 나도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했다. 확실히 동기부여가 됐다"며 "한 번 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승왕에 올라야만 MVP 후보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모든 목표를 이뤘다. 최고의 결과도 얻었다. 단상에 오른 양현종은 의연해 보였다. "꿈 같은 한 해를 보냈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 감사하게 생각한다. 팀 대표로 받은 것 같아 더 기쁘다"고 했다. 그러다 잠시 울컥했다. 가족을 언급하던 순간이다. "시즌 중에 부모님이 정말 많이 고생하셨다"며 "아내가 아이 둘을 키우면서 힘들어했다"고 울먹였다. "이제 멋진 아들, 멋진 남편, 멋진 아빠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사실 양현종은 야구만 잘하는 게 아니다. 마음 씀씀이도 곱다. 그는 지난여름 모교인 광주 동성고에 후배들을 위한 최신형 버스를 선물했다. 지난해 말 연봉 15억원에 1년 계약을 맺자마자 곧바로 모교에 도움을 줄 방법을 찾았다. "이동할 때 타는 버스가 너무 낡았다. 새 버스가 가장 필요하다"는 귀띔을 듣고 팔을 걷어붙였다. 1억7000여 만원을 들여 프로급 시설이 완비된 버스를 구매했다.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끝까지 꺼렸다. 고향과 KIA를 향한 애정도 남다르다. 양현종은 올해 다시 구단과 FA 계약을 해야 한다. 그는 MVP 수상과 동시에 자신의 거취도 못 박았다. "이 자리에서 KIA팬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년에도 KIA 유니폼을 입겠다." 시상식장에 모인 팬들이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양현종은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