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55) 대한축구협회(KFA) 회장이 '개혁의 칼'을 휘둘렀다. 최근 한국 대표팀의 부진과 거스 히딩크(71) 감독 논란 그리고 KFA 임직원들의 법인카드 부정 사용 적발 등 한국 축구에 최대 위기가 닥쳤다. 축구팬들은 분노했다. 집회를 벌이며 KFA를 질타했고, 개혁과 변화의 목소리를 내질렀다. 오랫동안 쌓여 온 KFA를 향한 불신, 독선 그리고 부패에 대한 외침이다.
이에 정 회장은 고개를 숙이며 인적 쇄신을 약속했고, 8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파격, 또 파격이다. 김호곤(66) KFA 기술위원장 겸 부회장은 이미 사의를 표시했고, 이어 이용수(58) 부회장과 안기헌(63) 전무이사가 옷을 벗었다. 이 부회장은 기술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부회장 자리는 유지해 축구팬들의 큰 질타를 받았다. 이번 인사에서는 피해 갈 수 없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안 전무이사다. 그는 정 회장의 핵심 인사다. 그는 정 회장이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였던 시절부터 사무총장으로 보필했다. 정 회장이 KFA 회장으로 입성하자 함께 왔다. KFA 실세로서 절대 권력을 누렸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안 전무이사도 개혁의 칼은 피할 수 없었다. 인적 쇄신을 향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새롭게 들어선 인물을 보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위원회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술발전위원회 위원장에 이임생(46) 전 중국 톈진 감독, 학원·클럽 리그를 관장하고 제도 개선을 담당할 부회장에 최영일(51) 전 동아대 감독 그리고 대회위원장에는 조덕제(52) 전 수원 FC 감독이 선임됐다. 의외의 인물들이다. KFA와 큰 인연이 없는 감독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KFA와 현대가에 충성을 바쳐 한 자리 얻으려 했던 익숙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의미다. 정 회장이 회전문 인사를 타파하겠다는 의욕을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긍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일부 회전문은 깨부쉈으나 100%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홍명보(48) 전 대표팀 감독을 새로운 전무이사로 발탁한 것이 그렇다.
홍 감독은 KFA의 황태자였다. 선수 시절 최고의 스타였고 현역 은퇴 뒤 KFA가 전략적으로 키운 지도자였다. KFA로부터 각종 지원과 특혜를 받았다. 승승장구하다 2014 브라질월드컵 참패로 무너졌다. 이후 홍 감독은 재기를 노렸지만 실패했다. 중국 항저우 뤼청 감독을 수행하다 1부리그 팀을 2부리그로 강등시켰다. 이후 어떤 성과도 올리지 못했다.
이런 그에게 KFA는 전무이사라는 '파격적 대우'를 해 줬다. 안 전무이사를 보면 알 수 있듯 KFA에서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자리다. 월드컵 실패 뒤 아무것도 보여 준 것이 없는 홍명보다. 그에게 이런 핵심 자리를 준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도자와 행정가는 다를 수 있다. 지도자로서 실패했지만 행정가로서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행정가로서 최소한의 경험과 가능성을 보여 준 뒤 영입했어야 했다. 경험이 전무한 그에게 KFA '행정 총괄 책임자' 자리를 맡긴다는 것은 '특혜'라고 볼 수밖에 없다. KFA 황태자를 아무 조건 없이 다시 모셔 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회전문 인사다. 박지성(36)은 다른 케이스다. 그는 유소년 축구 총괄 임원인 유스전략 본부장을 맡는다. 그동안 KFA와 거리를 뒀던 박지성의 첫 입성이다.
평소 유소년 축구에 큰 관심을 보였던 박지성에게 어울리는 직책임은 분명하다. 박지성이 경험한 유럽 선진 축구와 그의 유소년에 대한 열정이라면 충분히 기대해 볼 만하다.
상황은 다르지만 홍명보와 박지성의 경우 공통점이 있다. '스타'라는 점이다. KFA가 자신들을 바라보는 매서운 시선을 돌리기 위해 홍명보, 박지성이라는 한국 축구의 최고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KFA는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라고 표현했지만 스타 마케팅 뒤에 숨으려 한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여론 무마용인 셈이다.
지난 사례를 통해 패턴이 읽힌다. KFA에 비난과 논란이 생기면 항상 스타가 등장했다. 스타급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워 논란을 무마시키려 했다. 2012년 조광래(63) 대표팀 감독의 밀실 경질과 비리 직원의 거액 위로금 논란 등으로 KFA는 비난의 중심에 섰다. 그러자 KFA는 '야생마'로 불리며 한국 축구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꼽히던 김주성(51)을 신임 사무총장으로 임명하며 전면에 내세웠다. KFA는 또 다른 스타 희생양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