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말이 딱이다. 평생 따라붙을 대표작 '똥파리' 한 편은 이미 챙겼다. 감독으로서 컴백은 막연히 미뤄두고 배우 양익준으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누빈 그는 올해만 영화 '시인의 사랑', 일본 영화 '아, 황야' 그리고 12월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OCN '나쁜 녀석들'까지 줄줄이 선보이고 있다. 시인이 됐다, 복싱 선수가 됐다, 또라이 형사 옷도 입은 양익준이다. 비슷한 듯 다르게 본인 특유의 매력까지 살려내는 찰떡같은 소화력은 양익준을 계속 보고싶고 궁금하게 만드는 배우로 성장시켰다.
꽁꽁 감추기 보다는 더 드러내는 삶을 택했다. 답답함에서 벗어나고자 소속사를 나와 홀로 모든 일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은 괜찮다"는 반응이다. 떠나고 싶을 때 해외로 떠나고, 글 쓰고 싶을 때 글 쓰고, 연기하고 싶을 때 연기하는 것도 결국 양익준의 능력이다. 의상까지 직접 준비해 코디하는 부지런함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일상적인 인터뷰도 일상적이지 않게 만드는 것은 결국 배우의 답변이다. 쉬운 듯 쉽지 않은 이야기를 쏟아낸 양익준은 '예술가' '아티스트'로 보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이미 그 세계에 깊이있게 발을 들여놓은 것인지 다소 헷갈리게 만들지만 보편적이고 평범한 것을 거부하는 것 만큼은 확실하다. 여전히 날 것 그대로의 매력을 지켜내고 있는 양익준의 행보에 기대가 더해지는 이유다.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 건강 관리는 신경쓰고 있나. "뺐다 찌웠다 난리도 아니다.(웃음) '아, 황야'에서 복싱 선수로 나와 살을 좀 찌워야 했다. 근데 난 살찌면 배만 나온다. 원래 5~6kg 정도 더 찌우려고 했는데 복싱 영화니까 운동을 또 엄청 하게 되지 않나. 맥도날드를 몇 끼씩 먹었는데도 살이 안 찌더라. 보름동안 1kg도 안 쪘다. 겨울이라 옷 여러겹 입으면서 덩치 커 보이게 만들었다."
-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 것 같다. "'춘몽' 때부터 딱 주연이다 할 수는 없지만 역할이 좀 달라졌다. '시인의 사랑'도 그렇고, 일본에서 찍고 온 영화도 네 번째 출연인데 공동 주연을 하게 됐다. 청춘 영화다. 내가 43살인데 32살로 나온다. 20대 초반 역할로 설정돼 있길래 감독님에게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했고 32살로 맞춰졌다.(웃음)"
- 홍보 때문에 정신 없겠다. "한국 영화는 개봉 한 달 반, 한 달 전부터 홍보를 한다고 하면 일본은 대략 반 년 전부터 시작한다. 약속이 돼 있던 것이라 프로모션에 계속 참여해야 했다. 한국의 씨네21 같은 100년된 일본 잡지사 표지 모델 촬영도 했다. 한국에서도 못했는데.(웃음) 최근 '똥파리'도 일주일 정도 상영해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했다. 말하고 보니 정말 되게 바쁜 것 같네."
- 일본 영화를 찍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좋은 작품이 있고,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웃음) 한국은 소소한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를 그린 영화들이 스크린 등 영화 환경 안에서 주저 앉았다. 몸에 좋으니까 홍삼만 먹어라? 별로인 것 같다. 밥도 계란도 같이 먹어야 전체적으로 건강해지는데, 우리는 너무 100억에 길들여져 있는 것 같다. 할 수 있는 작품도 제한적이다. 다양성 면에서는 일본 시장이 확실히 크다."
- 늘 문제시 되는 자본이다. "현실에 적응하면서도 과거를 그리워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지금 10년 전을 그리워 한다면, 10년 전에는 그 10년 전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 2010년까지만 해도 질적으로 엄청나게 좋은 소재들이 발전했는데, 그 과정을 지나니까 양으로 승부하는 환경이 됐다."
- '어쩔 수 없다'는 반응도 많다. "맞다. 뭐라 할 수는 없다.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그럴 수록 돈으로 지배받게 될 테고 도시에 있는 사람들도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나 인위적인 요소들이 덜 있는 공간으로 이주를 하게 될 것 같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공황장애 같은 병을 난 7년 전부터 그렇게 될 것이라 말하고 예측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수 밖에 없다."
- 양익준 감독으로서는 언제 만나게 될 수 있을까. "나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서….(웃음) '똥파리' 나오고 8년이 지난 것 같다. 공식적으로는 늘 '내년'이라고 답한다. 내 스타일이 한가지 일을 할 땐 한가지 생각만 해야 한다. 한가지 생각 안에서 건강한 가지들이 나오고 그 가지들이 자라 커다란 숲이 된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 만큼 또 다른 질량의 연기가 나온다. 연출을 하려면 연기를 관둬야 한다. 어떤 분들은 연기 연출 같이 하는 것이 부럽다고 하는데 나는 한 방에 같이 할 수 없다."
- 생각해 둔 이야기는 있나. "결국 또 내 이야기 아닐까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다 보니까 내가 들어가게 된다. 차기작은 새로운 생태 안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진짜 내년에 꼭 만들고 싶다. 만들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짧게는 JTBC '전체관람가'를 통해 단편을 선보이게 됐다. 보름만에 시나리오 쓰고 촬영까지 끝내야 한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일이다.(웃음) '나쁜 녀석들'까지 마치고 여력이 되면 반년 정도 쉬고 싶다. 쉬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까."
- 배우로서 힘든 점은 없나. "배우도 마찬가지로 영감을 스스로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 배우로서 표현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좋은 연기자들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훌륭한 연기에 관객들은 푹 빠지고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 나 역시 그렇게 연기하고 싶은데 쉽지는 않다."
- 욕심이 점점 더 생길 것 같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럴법한 사실적인 이야기가 있으면 그런 연기 또한 배우들에게 기대한다. 어떻게든 속이고 연기한다? 하다보면 다 뽀록나게 돼 있다.(웃음) 그러기 싫다. 연기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연기라는 단어를 쓰게 된다. 그나마 대체할 단어가 표현 밖에는 없다. 표현자로 잘 살아보고 싶다."
- 감독과 배우롤 병행하는 장점이 있다면. "두 역할을 어쨌든 다 경험해 봤다는 것? 난 배우가 아닌 분들도 캐스팅 한다. 어떤 직업이 있으면 실제로 그 직업을 갖고 있는 전문가에게 연기를 부탁할 때가 있다. 그들은 그 직업을 누구보다 잘 '표현' 할 수 있는 분들이다. 지나가다 보면 다 사진찍어 놓는다. 진짜 배우들은 직업인을 절대 못 이긴다. 배우들이 쫄 정도로 활용할 때가 있다."
- 이 모든 것을 홀로 해결하고 해소하고 있다. "지난해 소속사와 마무리 짓고 나서 '춘몽' 이후로 쭉 혼자 다니고 있다. 꽤 재미있다. 솔직히 힘들긴 힘든데 그런 어려움이 있어야 또 좋은 에너지가 생기니까. 주변에서는 '가능해?'라고 묻기도 한다. 못할 것은 또 뭔가. 다만 드라마를 할 땐 직접 운전하고 이동하느라 잠을 2~3시간 밖에 못 잔다는 것이 피곤으로 돌아오긴 한다. 근데 괜찮다. 지금은 혼자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