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전반이 특혜 채용·인사 비리 등 부정 이슈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사정 당국이 압수수색까지 하며 강공을 펼치고 있어 금융권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특히 이번 검경의 칼날이 금융사의 최고경영자를 향하고 있어 비상이 걸렸다. 이미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채용 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당국이 칼날을 겨누고 있는 다른 금융사의 수장들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이광구 자진 하차… 연임 앞둔 윤종규 KB도 비상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검찰과 경찰 등 사정 당국의 수사망에 올라 있는 금융사는 우리은행과 KB금융·하나금융·농협금융 4곳이다.
이 중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자진해서 사임했다.
그는 지난 2일 전체 임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지난해 신입 행원 채용 논란과 관련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우리은행 경영의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과 고객들에게 사과한다"며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한다"고 밝혔다.
이 행장은 지난 1월 우리은행 민영화 이후 민선 1기 첫 은행장으로서 연임에 성공했으나 1년도 안 돼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됐다.
이 행장은 검찰 소환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이 행장이 사임 의사를 밝힌 뒤 닷새 만에 우리은행 본점과 이 행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어 지난해 신입 사원 공채 전형을 진행한 경기도 안성 연수원도 압수수색했다.
다른 금융사 수장들도 비상이 걸렸다.
특히 오는 2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연임이 확정되는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가시방석이다. 검찰이 윤 회장의 횡령 및 배임 혐의를 들여다보기 위한 수사를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5451억원 규모의 배임·횡령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31일 이 같은 의혹을 처음 제기하고 윤 회장을 고발한 투기자본감시센터를 고발인으로 첫 조사에 들어갔다.
여기에 KB금융 노조협의회(KB노협)도 가세했다. KB노협은 윤 회장의 연임에 대한 직원 찬반 설문 조사에 사측이 개입해 윤 회장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3일에 KB금융지주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임시 주주총회을 앞둔 KB금융으로서는 폭탄을 맞은 셈이다. 일단 연임이 취소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검경 조사에서 윤 회장의 의혹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 연임 이후에도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
하나 김정태·농협 김용환 내년 연임 빨간불
내년 초 연임에 도전하는 금융사 수장들도 앞날이 깜깜하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발목이 잡혔다.
김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 주총까지로 연임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의 연임 도전은 벌써 세 번째로 지난 2012년 회장직에 오른 뒤 2015년 연임에 성공한 바 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된 특혜 논란을 받고 있어 연임이 쉽지 않아졌다.
하나금융 노조는 '하나금융지주 적폐청산 투쟁본부'를 결성하고 오는 20일께 김 회장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을 은행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최순실씨의 측근 이상화 전 KEB하나은행 독일법인장에 대한 특혜 승진과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특혜 대출 등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로 도마에 오른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은 연임은 물론 임기 완주도 불확실하다.
내년 4월까지 임기인 김 회장은 지난 4월에 주주총회에서 연임이 확정됐다. 그러나 금감원 채용 비리에 엮이면서 위기를 맞았다.
감사원은 지난해 금감원 5급 신입 공채 과정에서 일부 간부들이 특정 인원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선발 인원 수를 임의로 늘리는 등 비리를 저질렀다는 감사 결과를 지난 9월에 발표했다. 여기에서 김 회장이 김성택 수출입은행 부행장의 아들이 금감원에 취업할 수 있도록 청탁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검찰은 지난달 25일에 농협금융지주 본점 김 회장 집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가 민간 금융권까지 번진 만큼 기존 임원들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결과에 따라 우리은행처럼 최고경영자가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