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원톱 누와르물'로 홍보된 영화 '미옥(이안규 감독)'이 혹평 속에, 흥행과는 멀어졌다. 배우들마저 아쉬움을 토로할 정도다. 영화는 관객들이 기대했던 완성도에 현저히 미치지 못했다.
'미옥'은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키워낸 2인자 현정(김혜수)과 그녀를 위해 조직의 해결사가 된 상훈(이선균), 그리고 출세를 눈앞에 두고 이들에게 덜미를 잡힌 최검사(이희준)까지 벼랑끝에서 마지막 기회를 잡은 세 사람의 물고 물리는 전쟁을 그린 느와르다.
관객들이 '미옥'에 더욱 분노한 이유가 있다. 영화 개봉 전 진행된 홍보·마케팅 포인트가 관객들이 실제 영화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범주에서 훨씬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미옥' 측은 애초 제목이었던 '소중한 여인'에서 '미옥'으로 제목까지 변경했다. 여성 캐릭터 김혜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영화는 현정(미옥·김혜수)이 아닌 상훈(이선균)의 이야기였다. 상훈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스토리는 상훈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상훈이 벌여놓은 판이다. 여기에 현정이 어쩔 수 없이 합류하는 식으로 흘러간다.
비주얼부터 액션까지 김혜수가 이번 작품으로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캐릭터가 아닌 영화 전체를 봤을 때 '김혜수의 영화'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특히 언더보스 김혜수에 '모성애'라는 키워드까지 끼얹으면서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혼란스러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김혜수·이선균이 개봉 전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 같은 반응을 예측, 배우이자 관객으로서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자 관객들의 혼란은 '시놉사기 아니냐'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결국 개봉 후 '미옥'은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김혜수는 "내가 원했던 모성애는 지금 영화에 담긴 모성애가 아니다. 최대한 드라이하게 그려지길 바랐다"고 밝혔고, '미옥'을 선택한 큰 이유 중 하나로 '여성 중심 누와르'를 꼽았던 이선균은 "원래 시나리오는 사건 중심의 누와르가 아니었다"며 "또 제목이 '미옥'이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생각하는 그림이 있지 않겠나. 반응이 염려되기도 한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이 출연한 영화가 융단폭격을 맞는다면 기분좋을 배우는 아무도 없다. 일부 배우들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개봉 후 무대인사 등 홍보에 일절 참여하지 않으면서 감정상태를 은연중 내비치는 경우도 있다. '망하고 있는 영화'의 무대인사는 분위기도 최악이다.
하지만 '미옥' 팀은 개봉 첫 주 무대인사를 비롯해 정해진 홍보일정을 100% 소화하고 있다. 책임감이 뒤따른 행동이다. 이에 수준 높아진 영화팬들은 작정하고 배우들을 위로하기 위해 일부러 영화관을 찾고 있다. 똑똑한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배우들은 이런 영화를 보여줄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미안함을 표했고,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 됐다.
특히 마케팅에 '이용 당한' 김혜수는 누구보다 따뜻한 응원과 위로를 받았다. 지난 주말 진행된 무대인사에서 관객들은 "김혜수"를 끊임없이 연호했고, 무대인사가 끝난 후 스크린 앞으로 달려가 직접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다. "계속 영화해 줘 감사하다"는 진심어린 인사도 이어졌고 김혜수는 감동받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위로에 김혜수는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영화 관계자는 "감독이 사고쳐 팬들이 마지막까지 위로한 '불한당'과 비슷하다. 결과는 아쉽지만 배우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이는 배우들이 현재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들의 수준을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 향후 작품 선택과 촬영 과정에 분명한 영향이 끼쳐질 것이다"며 "'미옥'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김혜수 개인 뿐만 아니라 여성 영화에 대한 응원이기도 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