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삼성 스트라이커 조나탄(27·브라질)은 한참을 고민하다 이렇게 말했다. 2017년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1부리그)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 수상을 동시에 노리는 선수치고 의외의 대답이었다. 조나탄은 올 시즌 정규리그를 한 경기만 남겨둔 가운데 22골로 사실상 득점왕을 예약했다. MVP에선 이재성(전북 현대) 이근호(강원FC)와 나란히 후보에 올랐다. 조나탄이 내놓은 대답은 의외였다. 그는 "2017년은 축구인생에서 자신이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해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록만 보면 무난히 최고가 된 것처럼 보인다.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부푼 기대를 안고 시즌을 시작했지만, 초반 부진에 빠졌다. 골침묵이 길어지면서 수원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탈락의 아픔을 겪었다. 연일 골을 터뜨리며 압도적인 득점 1위를 질주하던 지난 7월엔 예상치 못한 발목 부상으로 쓰러졌다. 2개월간의 힘겨운 재활 끝에 복귀하자, 이번엔 피말리는 득점 경쟁을 이겨내야 했다. 지난 9일 경기도 화성의 수원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조나탄은 "올해 생각대로 이뤄진 것은 거의 없지만, 덕분에 나는 더 경쟁력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며 웃었다.
-시즌 종료까지 딱 한 경기 남았다. 소감은. "목표로 삼은 것들을 다 이루지 못해 만족스럽다고 말을 할 수는 없다. 정규리그 우승 경쟁을 해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동료들이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렸는 지 잘 알고 있기에 더 아쉽다."
-이뤄진 목표도 있나. "시즌을 준비하면서 득점왕을 꼭 해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리그에서 25골 넣으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부상 복귀도 득점 1위라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덕분에 득점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물론 확정은 아니다. 다른 선수가 마지막 한 경기에서 5골을 넣어버리면 밀린다. 하하"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동안 경쟁자들은 계속 골을 넣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할까봐 불안했겠다. "사실 회복까지 2개월이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당연히 2위 그룹에게 따라잡힐 줄 알았다. 그런데 2위권 선수들의 추격이 생각보다 더져진 덕분에 나도 최대한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몸상태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다치지 않았다면 몇 골이나 넣었을까. "30골."
-워낙 짧은 시간에 골을 몰아쳐 '득점기계'라는 별명이 붙었다. 골감각은 재능인가. "골은 100%의 재능과 100%의 노력이 합쳐져야 한다. 죽도록 노력만 한다고 나오지 않는다. 골문 앞 위치 선정은 골냄새를 맡는 본능을 가진 스트라이커만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다고 재능만 믿고 여유를 부려도 골맛은 볼 수 없다. 나는 노력도 하고, 타고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하하"
-무각슛·바이시클킥·오버헤드킥 등 유독 환상적인 골이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골 장면은. "전남 드래곤즈전(7월19일) 오버헤드킥이다. 몇 해 전 스웨덴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잉글랜드를 상대로 모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먼 거리 오버헤드킥을 넣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때 '나도 기회가 된다면 저런 골을 넣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올해 넣은 골 중 가장 어려운 슛을 성공시켜서 가장 많이 남는다."
-어려운 자세에서 슛을 잘 하는 비결이라도 있나. "팀 훈련 후 항상 동료 선수들에게 크로스를 부탁해 발리슛 훈련을 추가로 한다. 연습을 거르는 법은 없다. 선수들이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이면 스태프에게 도움을 청한다. 연습량은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만족할 때까지 몇 시간이라도 강도 높게 한다. 스트라이커는 실수가 적어야 하는 포지션이다. 동료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대충할 수 없다."
-'찰떡 궁합'인 선수가 있을 것 같다. "당연히 염기훈이다. 같이 뛰어보니 왜 팀에서 존경받는 선수인 줄 알겠더라. 그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패스를 가장 선호하는 지 순간적으로 알아차린다. 괜히 베테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게 아니다. 염기훈이 내 팔 앞에 정확이 떨어지는 패스를 해줄 때마다 '내가 텔레파시를 썼나. 어떻게 알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라운드 위에서 마주치기 싫은 수비수는 누군가. "특정 선수보다는 전북 수비진을 꼽고 싶다. 올해 전북을 상대로 2경기를 뛰었는데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전북의 끈질긴 수비는 정말 뚫기 어렵다(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최악은 부상이다. 하지만 아쉬운 순간은 시즌 초반이다. 마음처럼 경기가 풀리지 않아 개막 후 4경기 연속 골을 넣지 못했다. 넣어야 할 경기에 골을 넣지 못해 팀이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수원을 꼭 챔피언스리그 16강 토너먼트에 올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에 아쉬운 기억이다."
-힘든 시기 가장 힘이 됐던 사람은. "서정원 감독님이다. 나는 고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 삭히는 편이다. 서 감독님은 내가 골 침묵할 때도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신 분이다. 내 부상과 맞물려 팀 성적이 나쁜 가운데서도 '괜찮다. 확실히 회복해서 다시 함께 뛰자'고 격려를 해주셨다."
조나탄의 별명은 '수원 호날두'다. 키 184cm·체중 74kg의 탄탄한 체격은 물론 여심을 녹이는 잘생긴 얼굴까지 세계적인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를 닮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호날두의 전매특허인 골 세리머니까지 똑같다. 골을 터뜨린 호날두는 점프한 뒤 착지 상태에서 양팔을 젖히며 포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호날두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조나탄은 같은 세리머니를 리그에서 자주 펼친다.
-올해도 여전히 '호날두 세리머니'를 펼쳤다. "시즌을 앞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세리머니를 하는 게 좋을 지 물었다. 대부분이 지금까지 해온 호날두 세리머니를 보고 싶어 하더라. 나 역시 이 세리머니를 할 때 가장 기분 좋다."
-여전히 호날두를 가장 존경하나. "가장 본 받고 싶은 선수다. 골문 앞 경쟁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평소 자기 관리도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있다. 내가 고향 브라질 출신 스타 네이마르 같은 선수를 제치고 호날두를 좋아하는 이유다. 호날두처럼 경기장 안과 밖에서 사랑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관심사도 호날두와 비슷하다고 들었다. "쉴 때도 가만있지 않고 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에 와서 야구에 빠졌다. 동료들과 배팅장도 가고 실제로 야구시합도 한다. 야구 말고는 쇼핑을 즐겨한다. 무언가를 산다는 뜻이 아니라 아이쇼핑을 즐긴다. 패션에 관심이 많다. 참, 포털에서 내 기사를 읽는 것도 즐긴다. 하하"
조나탄은 한국 축구가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부진을 겪던 지난 여름 귀화 가능성이 제기됐다. 축구팬들은 환영했다. 하지만 설사 특별 귀화를 한다고 해도 해당국가에서 5년 연속 거주해야 출전이 가능한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귀화설은 그저 설에 그쳤다. 그랬던 조나탄은 최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의 이름과 등번호 7이 새겨진 한국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을 올렸다.
-한국 대표팀 유니폼이 잘 어울린다. "부상 전까지만 해도 귀화 관련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가끔 한국 대표로 뛰는 상상도 한다. 기회가 있고, 귀화를 할 수 있다면 큰 영광일 것 같다는 생각은 변함 없다. 외국인 선수를 귀화하게 해서 해당 국가 대표로 나가게 해준다는 것은 대단히 큰 신뢰를 준다는 뜻이다.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책임감 있게 해낼 자신도 있다."
-한국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많다고 들었다. "인생이 달라졌다. 아낌없는 믿음을 주는 수원 감독·코칭스태프·선수단·서포터즈 덕분에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다. 이곳에서 뛰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한국에 갚을 것이 많다." -한국말은 어느 정도 하나. "대구 시절을 포함하면 3년째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 말하는 건 여전히 서툴지만, 웬만한 건 다 알아듣는다. '안녕하세요'만 즐겨쓰던 한국 생활 초기와는 다르다. 하하" -음식은 익숙하겠다. "김치찌개를 가장 좋아한다. 숙소에 있을 땐 그냥 식당에서 선수들과 한식을 어울려 먹는다." -한국에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수원에 처음 와서 라커룸을 구경하는데, 통로 한 쪽에 구단 레전드들의 사진이 붙어있더라. 그때 결심했다. '구단이 인정하는 선수, 팬들이 인정하는 선수가 돼 보자'고 마음 먹었다. 수원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을 때 팬들의 환호성과 관심을 느꼈다. 나는 수원이 K리그에서 가장 큰 구단이라고 믿고 있다. 나도 수원의 레전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뛰고 있다."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는 구단과 팬들에게 득점왕과 MVP라는 타이틀을 안겨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기쁘다. 솔직히 말하면 득점왕은 물론 MVP 욕심도 있다. 다른 후보 2명도 훌륭하지만, 나 역시 최선을 다했다. 각 선수의 팀 기여도·퍼포먼스·최고의 장면을 보시고 판단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