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부터 지금까지 줄곧 연기력 논란 한 번 없었고 노래·진행 등 예능적인 면도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다. 같이 호흡한 김남길도 "많은 여배우와 작품을 했지만 김아중의 연기에 대한 열정은 정말 남다르다"고 말할 정도다.
초가을 tvN '명불허전'을 끝내고 만난 김아중은 아쉬운게 많아 보였다. 시청률과 작품성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뤘고 김아중도 30대 여배우의 브라운관 활약이 뜸한 시기에 독보적인 존재감을 내뿜었으나 시청자들이 미쳐 모르고 지나간 디테일한 연기에 대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손 연기를 제대로 못 하는 저를 모니터로 보고 있으니 너무 답답했어요. 아쉽고 속상해서 혼자 펑펑 울었어요. 시청자들은 눈치 채기 어려운 작은 것들이라해도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죠."
데뷔 초만에도 예능에서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본업인 배우 활동에만 주력하고 있다. "전문직만 하다보니 좀 어려운 느낌이 있나봐요. 종종 들어오던 예능 제안도 뜸해지고요. 사실 춤추고 노래하기엔 이제 몸이 많이 무거워졌어요. 하하하."
나이가 들면 욕심이 더 생긴다고 하지만 김아중은 내려놓고 있다. 20대에는 또래 배우보다 잘 되기 위해 더 애썼지만 지금은 모두가 잘 되길 바라고 있다. "각자 할 일을 잘해서 누구 하나 도태되지 않고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커요. 동료 배우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내 일인듯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고요. 욕심 경쟁 그런 건 이제 없죠."
취중토크 세 번째 자리에 나선 김아중. 역시 숙련자 답게 능숙하다. 잔을 부딪히는 각도와 카메라에 뻗어야 하는 손동작, 이번에는 완벽하다. 오랜만에 마주한 맥주잔을 기울이며 그간의 얘기를 털어놓았다. 술자리에 이어 커피까지 네 시간 넘는 수다 대잔치였다.
[취중토크①]에 이어‥
-워낙 서구적으로 생겨 한복입은게 생소해 보였어요. "(웃음) 제가 봐도 안 어울리더라고요. 마치 전주에서 한복 체험하거나 한옥 마을에서 한복 한 번 입어 본 아낙 같은 느낌이었죠. 한복에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채도가 낮거나 시크한 한복은 잘 어울리는데 '아씨 한복'이 안 어울리더라고요. 피부가 검고 눈코입 동글동글해서 그런가봐요."
-의학 드라마라 준비할 게 많았을 것 같아요. "드라마 시작 전 프리프로덕션 기간에 열흘정도 흉부외과 의사 선생님과 생활을 했어요. 새벽 6시부터 회의 듣고, 회신 돌고, 환자 보호자 허락 하에 수술을 참관 했어요. 의사 선생님과 인터뷰 하면서도 응급상황이 많이 일어났어요. 외과는 직접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분야라 분초를 다투더라고요. 심장 이식 수술도 빈번해서 고되고요. 의사 사이 위계질서도 확실했어요. 그런 상황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보람을 찾는지 살펴봤죠."
-의사의 자격과 신념을 다뤘는데 정작 본인이 생각하는 배우의 신념은 뭘까요. "'명불허전'을 찍으면서 '배우로서 자격이 있나' 자신에게 질문했어요. '배우로서 어떤 감동을 주는지, 울림을 줄 수 있는지, 내 캐릭터를 잘 설득시키고 있는지' 등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죠. 스스로 배우의 자격을 판단했을 때 '자격이 없다'라는 생각보다 '이런 부분이 부족하니까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성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반성했네요. "반성이라기 보단 미숙한 것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어요."
-자괴감이 든 이유는요. "작품이 끝난 직후엔 아쉬움이 남아요. '이 신은 이렇게 해 볼 걸. 이것 밖에 못했지'라고 생각하죠. 시청자들은 눈치 채기 어려운 작은 것들이에요."
-예를 들면요. "15회 엔딩에서 김남길 오빠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 장면이 있어요. 되도록 슬픔, 아픔을 감추고 편하게 보내줘야 하는 신이었어요. 대본 볼 때도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런데 김남길 오빠를 보내는 손 연기를 안 했더라고요. 정말 아쉽고 속상하고 자괴감이 들어 또 펑펑 울었어요. 마치 쉽게 보낸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모니터링 하기 힘들겠어요. "스스로 연기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아요. '못 했지만 괜찮네'라는 용서가 안돼요."
- 완벽주의자 인가요. "연기할 때만 그래요. 되도록이면 완벽하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배우는 예민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일상에서는 디테일하고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웃음)"
-대본의 모든 장면을 기억하나요. "현장에서의 매순간·매신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5개월 넘게 촬영했잖아요. 수개월에서 1년 쯤 지나야 현장이 생각 안 나는 것 같아요. 그땐 상황을 좀더 객관적으로 보게 돼요."
-지금껏 맡았던 역할을 보면 대부분이 전문직이에요. "아마도 '싸인'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장르물의 시초라 그때의 기억이 커서 제안도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힘들었던 점이 있나요. "다른 드라마에 비해서 체력적으로 힘든 건 없었어요. 대본도 일찍 나왔고요. 그래서 촬영 속도가 빨랐어요. 아이러니하게 대본이 미리 나와 있어서 쉬질 못 했어요. 보름에 한 번 정도 집에 들어가고, 짐 싸서 다시 나오고 반복했죠."
-데뷔 13년차에요. 연기에 여유가 생긴 것 같나요. "아직도 멀었죠. 대본을 보고 캐릭터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방법과 연기에 있어서 아주 조금 발전을 했겠지만 사람을 대하고 현장을 아우르는 건 여전히 미숙해요."
-이제 어딜가도 선배죠. "후배가 정말 많아졌어요. 어디가면 선배에 속하죠. 그래도 선배도 많아요. 후배들에게 나이도 물어보지 않고 친한 친구처럼 지내다가, 그들이 '미녀는 괴로워'를 초등학교 때 봤다는 말을 듣고 괴로웠어요. 현실 감각을 잃었나 생각이 들었죠. 그 다음부턴 선배답게 행동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웃음)"
-할 말은 하는 성격인가요. "그런 편이에요. 선배님들을 보면 똑같이 예민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의사를 전달하더라고요. 그런 방법을 배워야할 것 같아요."
-작품 고르는 눈이 탁월해요. 대본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이 있나요. "소속사 대표님이 워낙 대본을 잘 읽어요. 그래서 대표님과 상의를 많이 하죠. 설득을 당하기도 하고, 스스로 납득이 되기도 해요. 그래도 선택은 제가 하는 거죠. 조금이라도 새로운 부분이 있는지를 보고, 이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뭔지, 짜임새는 있는지, 같이 만들 사람은 누군지 생각한 다음에 캐릭터를 봐요."
-앞으로 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밝고 유쾌한 역을 해보고 싶어요. 이제 너무 똑똑한 전문직은 좀 쉬어야죠. 인간적인 느낌의 역할을 원해요."
-국제여성영화제 홍보대사로 활동했어요. "여성 영화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외국엔 '바그다드 카페' 같은 여성 영화가 있는데 국내에는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싱글즈' '미씽' '더 테이블' 같은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예능 MC도 많이 했어요. "MBC '서바이벌 두근두근'으로 첫 예능에 출연한 뒤 KBS 2TV '해피투게더' MC를 1년 반정도 했어요. 예능에서 많이 눈에 띄고 예쁨 받았었죠."
-노래도 잘 하잖아요. 요즘엔 끼방출이 뜸한 것 같아요. "서른여섯이 되니까 나가서 노래하고 춤추기엔 몸이 무겁더라고요. 이상하게 '미녀는 괴로워'에서 '잘 할 것이다'라는 선입견이 생겨서 그런지 노래하는 게 어려워 졌어요. 왠지 더 잘해야될 것 같은 의무감이 들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