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에 막을 내린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2017(APBC)'은 투수의 제구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는 대회였다. 눈여겨봐야 하는 선수 중에 한 명은 사이드암스로인 임기영(24·KIA)이다.
대만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한 임기영은 7이닝 동안 109구를 던지며 2피안타 3볼넷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승패를 떠나 대만 타자를 상대하는 레퍼토리가 흥미로웠다. 빠른공으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것보다 예리한 체인지업과 오른손 타자의 몸 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투심패스트볼로 타자를 요리했다. 속구는 140km 안팎에서 형성돼 위력이 없어 보일 수 있었지만 완벽에 가까운 제구로 대만 타자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사이드암을 공략하기 위해 주로 왼손 타자를 전진 배치한 대만의 전략을 무력화했다. 이번 APBC를 통해서 장현식(NC) 한승택(KIA) 장필준(삼성) 같은 선수들이 두루두루 두각을 나타냈지만 임기영의 호투는 여러 가지 부분을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임팩트가 강했다.
한국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한 천관위(지바 롯데)도 비슷했다. 속구 구속은 140km에 미치지 못했지만, 스트라이크존 구석을 찌르는 완급 조절과 '면도날' 제구로 아웃 카운트를 잡아 나갔다. 압권은 한국과 결승전에 선발투수로 나온 다구치 가즈토(요미우리)였다. 다구치는 키가 171cm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체격이 강점인 투수가 아니다. 신장만 봤을 땐 '작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속구 구속도 임기영과 마찬가지로 140km에서 유지됐다.
하지만 스트라이크존 양 사이드에 완벽하게 꽂히는 제구로 7이닝 6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에 우승을 안겼다. 타자 입장에서는 알고도 당했다. 국내에서도 제구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투수는 꽤 있다. 대표적인 게 윤성환(삼성)과 유희관(두산)이다. 두 선수는 모두 시속 140km가 안 되는 속구를 던지지만, 모두 시즌 10승을 경험했다. 다구치와 비슷하게 제구가 잘되지 않을 때는 쉽게 공략당할 수 있지만 흔들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롱런이 가능하다. 선수의 꾸준함을 만들어 주는 건 결국 '제구'다.
KBO 리그에서 볼넷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적을 수 있다. 실제 수치상 리그 전체 볼넷은 줄었다. 지난해 5373개였던 볼넷이 4520개로 800개 정도 감소됐다. 언뜻 투수의 컨트롤이 좋아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넓어진 스트라이크존과 공격적인 타격 성향이 어우러져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국내 선발투수의 볼넷은 여전히 많다. 올해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19명 중 볼넷 최소 허용 1~3위(제이크 브리검·에릭 해커·라이언 피어밴드)가 외국인 투수였다. 반면 최다 볼넷 허용 하위 7명 중 5명이 국내 투수였다. 9이닝당 볼넷 허용이 2개 이하인 선발 8명 중에 외국인 투수가 5명이었다. 세부 지표만 봤을 땐 컨트롤에서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강력한 타선도 절묘한 제구력 앞에 꼼짝하지 못한다. 어설픈 컨트롤을 가진 투수가 많다면 대만처럼 타자의 기록은 올라갈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결국 타자 쪽에서 거품이 발생할 수 있다. 내년엔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이 열리고 프리미어 12와 2010 도쿄올림픽까지 야구와 관련된 국제 이벤트가 많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임기영 같은, 컨트롤이 좋은 투수를 좀 더 키워야 한다.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번 APBC에서 빈약하다고 평가받았던 타자들의 공격력도 리그 투수력이 좋아지면 비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신체 조건을 갖추고 공까지 빠르면 금상첨화 아니겠나. 하지만 제구가 안되면 결국 일본과 결승전처럼 난타를 당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