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한들의 보디체킹이 난무하는 풋볼에 비하면 농구 경기 중 몸싸움은 살짝 긁히는 정도로 느껴져요. 제 자신이 농구공을 든 쿼터백이 됐다고 상상하면 어떤 플레이도 해낼 수 있습니다."
'코트 위 쿼터백' 브랜든 브라운(193.9cm)이 올 시즌 농구판을 달구고 있다. 인천 전자랜드는 최근 13시즌 중 10시즌 동안 6위 이하의 성적을 거둔 '만년 중하위권' 팀이다.
이번엔 다르다는 평가다. 전자랜드(10승6위)는 팀당 16경기씩 치른 2017~2018시즌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선두 서울 SK에 3경기 뒤진 4위를 기록 중이다. 2위 원주 DB와는 불과 1게임 차. 강력한 우승후보로 급부상했다.
전자랜드 돌풍은 지난달 대체 선수로 한국 땅을 처음 밟은 브라운으로부터 시작됐다. 개막 후 5경기에서 1승4패로 고전한 전자랜드는 부진했던 외국인 센터 아넷 몰트리(206cm)를 내보내며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브라운은 '복덩이'였다. 전자랜드는 브라운 영입 이후 11경기에서 9승2패를 기록 중이다.
브라운은 지난 여름 외국인 드래프트 때 외면 당한 선수였다. 키 193㎝가 넘으면 장신으로 분류하는 한국농구연맹(KBL) 규정 때문이다. 장·단신 외국인 선수 1명씩을 뽑아야 하는 팀들은 센터 포지션을 맡길 선수로 브랜든보다 190cm 후반의 '빅맨'을 선호했다.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은 시즌 초반 외국인 선수 교체 카드를 놓고 고민하다 브라운을 선택했다. 힘과 탄력을 앞세워 저돌적인 골밑 플레이를 하는 브라운은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고 11경기를 뛰며 평균 21.4득점(7위) 11.6리바운드(3위) 2스틸(2위) 1.4블록(4위) 등 공수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다.
최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만난 브라운은 사진 촬영을 위해 덩크슛 시범을 보인 뒤 "더 잘 할 수 있으니 한 번만 더 하겠다"며 씩씩거리며 뛰었다. 그는 이후에도 세 차례나 더 덩크를 꽂아넣고서야 만족한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 정도면 충분할테니, 여기까지만 하겠다"고 말했다. 브라운은 한때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린스 지역 고교 최고의 쿼터백으로 이름을 날린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풋볼에서 쿼터백은 공격의 시발점이다. 타고난 강한 어깨와 실력은 물론 경기 흐름을 읽는 냉철한 판단력까지 요구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격이다. 고교 1학년 때까지 쿼터백으로 필드를 누빈 그는 루이지애나 지역 고교 풋볼팀들이 군침을 흘릴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브라운은 "풋볼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쯤 NFL 최고 쿼터백으로 활약 중일 것"이라고 큰 소리쳤다. 그는 "코트에서도 쿼터백처럼 공격의 시발점이 되는 선수가 꿈"이라고 덧붙였다.
'지구에서 가장 거친 구기종목'이라는 미식축구를 해서일까. 거침없는 플레이로 상대 골밑을 헤집고 다닌다. 농구 선수치고는 탄탄한 상체를 가져 '슈퍼 탱크'라는 별명도 얻었다. 지난 시즌 서울 삼성에서 뛴 마이클 크레익(188cm·120kg)과 닮은 꼴이다. 크레익 역시 고교 시절 풋볼 선수로 뛰었고, 큰 덩치 덕분에 국내에선 '코트의 포크레인'으로 불렸다.
가장 돋보이는 점은 리바운드 실력이다. 농구는 '높이'의 스포츠다. 키가 클수록 유리하다. 그런데 브라운은 현재 리바운드 부문 1~5위에 올라있는 선수 중 최단신이다. 리카르도 라틀리프(서울 삼성·199cm) 제임스 켈리(창원 LG·197.4cm) 로드 벤슨(DB·206.7cm) 오세근(안양 KGC인삼공사·200cm) 등에 비해 적게는 4cm, 많게는 14cm까지 작다. 그가 리바운드를 건져올릴 수 있는 비결은 압도적인 윙스팬(wing span·양팔을 벌렸을 때 길이) 덕분이다. 긴팔을 타고난 브라운의 윙스팬이 무려 220cm에 달하는 고릴라형 선수다. 국내 선수 중에선 약 10cm 더 큰 이종현(울산 모비스·203cm)과 같은 길이다. '국보급 센터' 서장훈(은퇴·207cm)은 윙스팬 207cm, 하승진(전주 KCC·221cm)은 225cm다. 유도훈 감독은 "브라운은 키가 작지만 윙스팬이 남다르고, 어깨 높이도 (키가 더 큰 동료) 정효근(202cm)보다 더 높다"며 "브라운이 안에서 해주니 포워드진이 살아난다"고 말했다.
브라운은 리바운드 비결을 이렇게 밝혔다. "농구는 신장(height)이 아니라 심장(heart)으로 하는 것이다. 르브론 제임스는 키 203cm에 불과하지만 자신보다 큰 선수들이 득실대는 미프로농구(NBA)에서 가장 뛰어나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불가능은 없다."
브라운은 전자랜드 적응을 거의 마쳐가는 중이다. 대표적인 저니맨(journey man·이 팀, 저 팀을 옮겨다니는 선수)인 덕분이다. 2009년 프로 데뷔 후 전자랜드가 20번째 소속팀일 만큼 유럽은 물론 아시아 무대 경험도 풍부하다. 그는 "향수병은 다른 사람 얘기다. 내가 뛰는 곳이 곧 고향"이라면서 "전자랜드 플레이 스타일과 팀 전술에 녹아드는 중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경기력은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인터뷰 말미에 '한국에서 르브론 제임스처럼 되는 것이 목표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득점왕이나 리바운드왕은 시즌이 끝나면 잊혀진다. 내가 지금까지 뛰어온 리그는 모두 그랬다. 하지만 챔피언은 영원하다. 나는 전자랜드와 남들에게 기억될, 챔피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