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다가오기 전인 지난 10월 18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 200 여 명의 관중이 모였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대비해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이 실시한 실전 훈련을 관전하기 위해서였다. 심판, 장내 아나운서는 물론 인근 상지대관령고 학생 120명과 군인까지 한 자리에 모여 메달의 꿈을 꾸는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을 응원했다. 뜨거운 환호 속에서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이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차례에 맞춰 썰매를 밀고 올라타는 모습은 내년 2월 이곳에서 펼쳐질 올림픽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현장의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피니쉬 라인에서 썰매를 끌고 올라온 선수들은 "실전 같은 느낌에 흥분이 됐다"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얼음으로 된 트랙 위 엄습하는 추위가 무색하게, 달아오른 슬라이딩센터의 풍경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슬로건 '하나된 열정'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냉철한 눈빛으로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이용(39)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들이 그 주인공. 무려 5개국 8명의 외국인 코치들이 한 자리에 모인 '썰매 드림팀'은 훈련이 진행되는 내내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 썰매의 날 하나까지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보완점을 찾았다. 그 중에서도 봅슬레이 대표팀에 새로 합류한 피에르 루더스(47·캐나다) 주행 코치의 눈빛이 특히 날카로웠다.
◇'우승 청부사', '올림픽 호스트' 한국에 오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은 올 시즌을 앞두고 외국인 코치 보강에 힘을 쏟았다. 지난 시즌 외국인 코치간 내분 문제로 속을 끓였던 연맹은 1998 나가노 겨울올림픽 봅슬레이 2인승 금메달리스트 루더스 코치를 영입했다. 루더스 코치는 2014 소치 겨울올림픽 당시 개최국인 러시아의 코치로 부임해 봅슬레이 2인승·4인승 금메달을 안긴 '우승 청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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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더스 코치는 "지난 3월 연맹의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주어진 시간이 촉박해 지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당연한 일이다. 남은 시간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개최국은 개최국의 자존심을 지켜야 하니 일정 이상의 성적을 기대한다. 누가 코치로 와도 부담이 큰 상황이었다. 그러나 루더스 코치는 오히려 '올림픽 개최국'이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그는 "'홈팀'이 제의할 때는 당연히 와야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는 선수로, 2014 소치 겨울올림픽 때는 코치로 '홈팀'을 경험했다"며 "평창 겨울올림픽까지 3연속 홈팀으로 경기를 치르는 건 정말 값진 경험이라 생각한다"고 미소를 보였다.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의 성장세도 루더스 코치의 마음을 움직였다. "내가 조금만 도와도 변화할 수 있고 정상에 오를 수 있는 팀이라 생각한다"고 얘기한 그는 "선수들도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책임감을 갖고 있고, 체계가 잡혀있는 팀이라 분위기가 매우 좋다"며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전체가 함께 하는 가족같은 분위기가 매우 즐겁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루더스 코치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뿐이다. 그는 "내가 가진 모든 걸 한국에 쏟아 붓겠다. 내가 원하는 것은 레이스에서 선수들이 가진 모든 걸 보여주는 것"이라며 자신의 노력을 선수들이 실력으로 증명해주길 바랐다. 지난 시즌 침체기를 겪었던 한국 봅슬레이는 지난달 25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휘슬러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3차 대회 남자 봅슬레이 2인승에서 1·2차 합계 1분44초51의 기록으로 올 시즌 최고 성적 6위를 기록했다. 이용 총감독은 "루더스 코치의 합류로 나도 선수들도 많은 것을 얻었다"고 반겼다. 연합뉴스 ◇'신성'을 '황제'로 이끄는 '킹메이커' 봅슬레이에 루더스 코치가 있다면 스켈레톤에는 리처드 브롬리(41·영국) 코치가 있다.
브롬리 코치는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정이 듬뿍 들었다. 2015년 대표팀에 합류한 브롬리 코치는 한국 대표팀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냐는 질문에 "우연한 기회로 도와주게 됐다가 성과가 좋아서 제의가 왔다. 뜻하는 바가 같아서 그 때부터 함께 하게 됐다"고 '쿨'하게 대답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으로 "김치 스프(김치찌개)"를 첫 손에 꼽을 정도로 한국에 익숙해진 그는 쑥쑥 성장하는 '신성' 윤성빈을 지켜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세계 3대 썰매 제조사 중 하나인 영국 '브롬리'사를 운영하고 있는 브롬리 코치는 윤성빈의 몸에 딱 맞는 썰매를 직접 제작했다. 0.01초 기록 싸움인 스켈레톤에서 썰매의 성능은 메달 색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다. 덕분에 구형 썰매와 신형 브롬리 썰매를 번갈아 타면서 윤성빈의 성적도 가파르게 좋아졌다. 타고난 재능과 끈질긴 노력에 섬세한 코칭이 더해지면서 '신성'이었던 윤성빈은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33·라트비아)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했다. 당장 올 시즌만 해도 2, 3차 대회에서 연달아 두쿠르스를 제압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브롬리 코치는 "윤성빈은 정말 너무나도 좋은 선수"라며 "매년 눈부신 성장을 해왔고 더욱 강해졌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도 좋은 성과를 이어가길 기대하고 있다"고 싱글벙글 웃었다. 동시에 그는 "절대 레이스의 결과를 단정짓진 않겠다.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해야할 일은 좋은 러너, 최상의 선수들을 잘 지도하는 것이다. 나는 오직 선수들에게 집중할 뿐"이라고 말했다. 브롬리 코치의 모습에 '신성'을 '황제'로 이끄는 '킹메이커'의 모습이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