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민병헌을 영입하며 숙제도 안았다. 리그에서 가장 탄탄한 외야진을 구축했지만 전력 극대화를 위해서는 포지션 정리가 불가피하다. 기존 선수인 전준우와 손아섭을 포함해 모두 좌익수 수비가 생소하다. 조원우 롯데 감독은 손아섭을 우익수로 못 박았다. 다른 두 선수가 원래 자리를 두고 경쟁할 전망이다.
한 팀의 화두가 아니다. 매년 포지션 전환을 시도하는 선수가 나온다. 팀과 선수 모두에 도전이다. 이유는 각양각색. 롯데처럼 외부 영입을 해 필연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팀이 있다. 지난해 주전 좌익수로 도약한 김문호는 다시 백업으로 밀릴 전망이다. 롯데는 올 시즌에도 이대호의 영입으로 자리를 잃은 김상호를 3루수로 기용했다. 선수층이 두꺼워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활용 폭을 넓히려는 의도도 있다.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이 떨어지는 선수가 많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포지션을 맡겨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뒤, 공격력을 증대하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민첩성이나 수비 범위가 떨어진 선수를 타격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리그 최고의 타자로 평가되는 김태균(한화)과 이대호(롯데)는 지금은 1루수와 지명타자로 나서지만 입단 직후에는 3루수로 나섰다. 투수들의 보직 이동도 비슷한 맥락이다. 불펜에서 경험을 쌓은 젊은 투수가 선발 기회를 얻고, 구위가 저하된 베테랑 투수는 불펜으로 이동한다.
세대교체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삼성은 올 시즌 외인 선수로 1루수 다린 러프를 영입한 뒤 구자욱을 외야수로 돌렸다. 원래 자리를 지키던 박한이는 우익수에서 좌익수로 이동했다. LG도 최근 3년 사이에 포지션 전환이 활발했다. 젊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내·외야의 이동을 가리지 않았다. 외야수던 서상우는 1루수, 내야수던 문선재는 외야수로 변신했다.
이번 겨울도 이 같은 움직임이 포착된다. 외인 선수 앤디 번즈에게 자리를 빼앗긴 '전' 롯데 주전 2루수 정훈은 외야수 전환을 준비한다. FA(프리에이전트) 황재균을 영입해 '핫코너'를 채운 kt도 기존 선수들이 분주해졌다. 멀티 내야수던 심우준과 정현은 유격수를 두고 경쟁할 전망이다. 다른 내야수 오태곤은 마무리캠프에서 외야 수비 훈련을 시작했다. LG 김용의는 다시 내야로 돌아간다. 이미 한 차례 외야수 전환을 시도했던 선수다. 하지만 소속팀에 젊은 외야수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1루수로 주전 도약을 노린다.
롯데 김대우와 SK 강지광은 야수에서 투수로 전향한다. 김대우는 이미 올 시즌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등판을 치렀다. 어깨 부상 탓에 야수로 전향했지만 자리를 잡지 못했다. 다시 투수로 돌파구를 찾는다. 겨우내 투심패스트볼의 제구력 향상과 구종 추가를 노린다. 지난달 2차 드래프트에서 SK의 지명을 받은 강지광도 도전에 나섰다. '거포 유망주'로 기대받은 선수지만 고교(인천고) 시절엔 에이스로 평가됐다. 염경엽 SK 단장과 손혁 코치가 그의 자질을 주목했다.
포지션 전환은 결코 쉽지 않다. 관성의 지배를 받는다. 내야수가 외야수로 전향하면 낙구 지점 판단, 타구 속도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다. 구자욱도 전반기 글러브를 뻗고도 놓친 공이 있었다. 정지된 상태에서 송구하는 플레이가 잦은 내야와 달리, 외야는 뛰어 들어오면서 잡은 공을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던질 때가 많다. 정확하게 송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같은 포지션 안에서 전환할 때도 마찬가지다. 유격수 수비가 익숙한 선수는 3루수보다 2루수에 더 어려움을 겪는다. 선수들은 "멀어지는 송구 거리보다 플레이 방향이 바뀐 게 더 혼란스럽다"고 입을 모은다. 2루수는 몸을 틀어서 송구를 해야 한다. 유격수와 연계 플레이도 잦다. 빠른 판단력과 움직임이 필요하다. 주춤하면 찰나에 갈리는 판정에 영향을 미친다.
외야도 예외는 아니다. 양쪽 코너 외야 수비를 모두 소화하는 선수가 드물다. 한 수비코치는 "빗맞아서 탄도가 높은 타구가 아니라면 대체로 휘어지는 타구가 많다. 방향이 바뀌면 당연히 몸도 반응이 달라진다"고 했다. "처음 외야수에 도전한다면 그나마 중견수가 수월할 것이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재환(두산)은 성공 사례다. 그는 포수로 입단했다. 좋은 신체 조건(키 183cm, 몸무게 90kg)을 갖췄지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1, 2군을 오갔다. 하지만 2015년 1루수, 2016년 외야수에 도전한 뒤 전환점을 맞았다. 간판타자 김현수가 팀을 떠난 뒤엔 주전 좌익수를 꿰찼고, 정교해진 타격 능력과 타고난 힘을 앞세워 거포로 거듭났다.
그러나 포지션 전환 뒤 주전으로 도약한 선수는 드물다. 2015년 중견수에서 우익수로 자리를 옮겨 정착한 나성범(NC), 올 시즌 1루수로 나서 무난히 임무를 해낸 김주찬(KIA)은 원래 팀의 주축 선수다. 출전 기회가 늘어났지만 꾸준히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유틸리티 플레이어가 많고, 포지션 전환도 활발한 메이저리그에서도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최근엔 포수에서 외야수로 전환해 정착한 시카고 컵스의 카일 슈와버 정도가 꼽힌다. 컵스는 포수 유망주 윌슨 콘트레라스에게 기회를 주면서도 슈와버의 타격 능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선수들에겐 불안감과 설렘이 공존한다. 한 선수는 "자리를 빼앗긴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좋을 리는 없다. 하지만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했다. 팀을 옮겨서도 황재균의 그림자에 갇힌 오태곤은 "타구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더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경쟁력을 갖추는 과정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다가올 시즌, 이들의 도전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