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8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북한 골키퍼 리명국이 펀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완성형 북폰(북한+부폰)'을 넘어라.
북한전을 앞둔 신태용호에 주어진 과제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2일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스타디움에서 북한과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2차전을 치른다. 북한은 단단한 수비가 돋보이는 팀이다. 상대 공격을 물 샐 틈 없이 막아 낸 뒤 역습 공격을 펼쳐 승부를 거는 방식이다.
골키퍼 리명국(31)은 북한의 수비 전술을 완성시키는 키 플레이어다. 2007년 북한 대표팀에 발탁돼 11년째 주전 수문장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북한'과 골키퍼의 레전드 잔루이지 '부폰(39·이탈리아)'의 이름을 합친 '북폰'으로 통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189cm의 큰 키에 순발력까지 갖춘 그는 북한의 슈퍼스타로 통한다. 명수비수 출신인 최영일 대표팀 단장은 "북한이 예전보다 더 강해진 느낌"이라면서 "수비가 바탕인 팀인데, 리명국이 잘 리드한다"고 말했다.
축구 DNA가 남다르다. 북한의 체육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골키퍼 출신 아버지의 재능을 닮았고, 배구선수였던 어머니로부터 탄탄한 체구를 물려받았다. 덕분에 리명국은 어린 시절부터 차세대 골키퍼로 주목받았다. 19세던 2005년 동아시아 챔피언십에서 북한 대표로 발탁됐고, 2008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부터는 주전 자리를 꿰찼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리명국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수문장 에드윈 판 데사르(네덜란드·은퇴)가 롤모델이다. 2015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시상식에서 북한 리명국이 최우수골키퍼상을 수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리명국은 유독 역대 남북전에서 신들린 선방을 과시했다. 2008 동아시아 챔피언십에서 처음 한국과 맞붙은 그는 총 6번의 남북 대결에서 겨우 3골만을 내줬다. 지난 동아시아 챔피언십(2015년)에서 맞대결은 '북폰' 수비 능력의 백미였다. 한국은 전·후반 합쳐 25개의 소나기 슈팅을 때리고도 북한 골문을 열지 못했다. 3.75분마다 리명국을 향해 슈팅을 쏟아 냈지만, 모두 마지막 순간에 리명국의 손에 걸린 것이다. 리명국은 이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됐다. 북폰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도 이때다.
리명국도 약점은 있었다. 남아공월드컵에서 허정무 감독을 보좌한 정해성 수석 코치는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북한과 남아공 최종예선을 앞두고 코칭스태프가 파악한 리명국의 약점은 오른쪽(골키퍼 기준) 부근이었다. 2008년 9월 10일 열린 1차전(1-1 무)에서 터진 기성용의 발리슛도 오른쪽, 2009년 4월 1일 벌어진 2차전(1-0 승)에서 김치우의 결승골도 오른쪽이었다"며 "그 외엔 결점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좋은 실력을 갖췄다"고 전했다. 허정무호의 골키퍼를 전담 지도했던 김현태 코치는 "리명국은 예전부터 잘했다. 북한이 월드컵에 갈 수 있었던 것은 골키퍼 덕분이라고 봐도 된다"고 떠올렸다. 그랬던 리명국이 100%가 돼 돌아왔다. 김해운 신태용호 골키퍼코치는 "공중볼 등이 약점이라고 들었는데, 1차전(일본전)에선 그런 모습이 많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운 것은 큰 경기 경험이었다. 아시아에선 '거미손'으로 불리던 리명국이 난생 처음 출전한 남아공월드컵에서 세계 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그는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포르투갈전에서만 7골을 내주는 등 3경기(브라질·코트디부아르)에서 12골을 허용했다. 골키퍼에겐 창피한 기록이지만, 그는 소위 '죽음의 조'에서 21개의 세이브를 기록한 게 화제가 됐다. 세계적인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독일)에 이어 세이브 부문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결승에선 한국의 파상공세를 120분간 막아 냈지만, 연장 후반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내주며 아쉬움을 삼키기도 했다. 리명국은 산전수전 속에서 차근차근 업그레이드한 셈이다.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그는 노련미로 '완성형 골키퍼'에 근접했다는 평가다. 그는 이번 대회 일본과 1차전에서 안정적인 수비는 물론 리딩까지 선보였다. 약점으로 지적된 공중볼 장면에서도 실수가 없었다. 김해운 코치는 "10년 이상 바뀌지 않고 주전을 차지한다는 것만 봐도 리명국의 실력을 알 수 있다"며 "우리 선수들이 집중해서 슛을 해야 공략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