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엔트리 23인, 그 중에서도 ‘공격의 핵’ 손흥민(25·토트넘)의 짝이 될 선수는 누구인가.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 반 년 남짓 남은 가운데 ‘손흥민 짝찾기’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신태용(47)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공수 양면에서 각각의 화두를 안고 있다. 특히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서도 불안을 드러낸 수비 조직력은 신 감독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문제다. 신 감독은 수비 전력 대부분을 동아시안컵에 기용할 수 있는 만큼, 이번 대회에서 본선을 위해 수비 조직력을 어느 정도 가다듬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회 첫 경기인 중국전에서 2실점을 허용하며 여전히 불안을 남겼다. 남은 6개월 동안 수비 조직력을 얼마나 다듬을 수 있느냐가 신태용호의 과제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 한 판이었다.
공격 면에서도 고민은 남아있다. 지난 11월 콜롬비아-세르비아와 치른 A매치 2연전에서 손흥민을 투톱과 원톱으로 다양하게 기용하며 공격 옵션을 실험했던 신 감독은 이번 동아시안컵에서 ‘플랜 B’를 찾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번 동아시안컵은 A매치 기간이 아닌 탓에 유럽파 선수들을 소집할 수 없어서 손흥민 없는 공백을 메워야 한다. 따라서 공격의 빈 자리에서 선수들이 얼마나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는지 파악하고, 원톱 혹은 손흥민의 파트너로 뛰며 전방을 책임질 선수를 가리는 것이 또 하나의 계획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김신욱(29·전북 현대)이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한 경기가 첫 경기 중국전이다. 경기 자체는 내용과 결과 모두 아쉬움이 남았지만 김신욱에겐 그동안 대표팀에서 희미했던 자신의 경쟁력을 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날 김신욱은 원톱으로 선발 출전해 0-1로 뒤진 전반 12분 이재성(25·전북 현대)의 패스를 받아 오른발 인사이드 슈팅으로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어 전반 19분에는 헤딩으로 공을 떨어뜨려 주는 절묘한 패스로 이재성의 추가골에 도움을 기록하는 등 1골 1도움으로 맹활약했다.
그동안 대표팀에 승선하고도 주로 후반 조커 역할에 그쳤던 김신욱으로선 선발로 나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펼친 값진 기회였다. 장점인 196㎝의 큰 키를 이용한 제공권 장악,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민첩한 몸놀림과 드리블 실력 등 자신의 쓰임새를 잘 보여줬다는 평가다. 스웨덴, 독일 등 피지컬이 좋은 유럽 선수들과 맞붙어야 하는 내년 월드컵 본선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옵션임을 증명한 셈이다.
김신욱은 손흥민과 ‘톰과 제리’로 불릴 만큼 절친한 사이라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소속팀은 다르고 뛴 리그도 다르지만 대표팀 소집 때마다 끈끈한 우정을 과시해왔다. 눈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사이가 좋은 만큼, 그라운드에서 투톱으로 나섰을 때도 찰떡같은 호흡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문제는 다른 선수들이다. 아직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다른 K리거 선수들이 어떤 활약을 펼치느냐가 ‘손흥민 짝찾기’ 경쟁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11월 A매치 2연전에서 손흥민의 파트너로 좋은 모습을 보였던 이근호(32·강원 FC)는 몸상태 때문에 첫 경기에 뛰지 않았으나 2차전 북한과 경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콜롬비아-세르비아전 만큼의 활약을 보여준다면 이근호도 손흥민의 파트너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한 ‘도전자’ 입장에서 뛰게 된 이정협(26·부산 아이파크) 진성욱(24·제주 유나이티드)의 경우 이번 동아시안컵이 가장 중요한 고비다. 이정협은 지난달 콜롬비아와 평가전 후반에 투입됐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동아시안컵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해야 한다. 만약 동아시안컵에서 만족스런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손흥민의 파트너는커녕 본선행도 위험할 수 있다. A대표팀 첫 발탁인 진성욱은 말할 것도 없다.
연합뉴스
이들이 동아시안컵에서 신 감독의 마음을 훔치지 못한다면 기회는 유럽파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당장 동아시안컵에서 김신욱이 ‘손흥민 짝찾기’ 프로젝트에 경쟁자로 부상한 다음날, 유럽에서도 또 한 명의 장신 공격수가 멀티골로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해 10월 6일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카타르와 홈 경기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대표팀에 불리지 않았던 석현준(26·트루아)이 그 주인공이다.
석현준은 10일(한국시간) 열린 프랑스 리그앙 AS모나코와 경기에 출전해 혼자 두 골을 터뜨렸다. 이날 경기 멀티골로 시즌 4·5호골을 터뜨린 석현준은 팀내 득점 선두로 나섰고, 리그 전체에서는 권창훈(25·디종) 등과 함께 득점 공동 12위에 올랐다. 특히 1~3호골을 터뜨린 지난 26일 앙제전까지는 3경기 연속 득점을 올려 리그에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을 보였다.
석현준은 ‘저니맨’이란 별명처럼 오랜 기간 동안 유럽 무대에서 여러 팀을 옮기며 뛰어왔다. 좋은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여러모로 고초를 겪을 때도 많았다. 팀, 혹은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임대되거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이적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리그앙 무대에 무사히 안착했다.
신 감독도 석현준의 활약상을 주목하고 있다. 190cm의 장신을 바탕으로 체격 조건이 좋은 유럽 선수들과 밀리지 않고 맞서는 모습, 탁월한 발기술과 슈팅력 등 자신의 장점을 살리며 유럽 무대에서 득점포를 기록하는 상황이 인상적이다. 신 감독은 앞서 E-1 챔피언십을 마치고 나서 곧바로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파 선수들을 점검한다. 석현준 역시 신 감독의 ‘시찰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감독이 살펴 볼 또 한 명의 선수는 황희찬(21·잘츠부르크)이다. 황희찬은 ’신태용의 황태자’로 불리다가 부상 여파로 지난달 두 차례 평가전 때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행 가능성이 높은 선수 중 한 명이다.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시즌 9골을 기록 중이다.
황희찬의 가장 큰 장점은 유럽 선수들과 몸싸움에 밀리지 않는 저돌적인 플레이다. 소속팀에서 몸상태를 회복한 뒤 경기에 나서 잇달아 골을 터뜨리고 있다는 점도 대표팀 재합류에 긍정적인 신호다. 신 감독이 이미 스타일을 파악하고 있는 선수라 경쟁 궤도에 다시 올라오면 김신욱, 석현준과 경쟁에서 한 발 앞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