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오프부터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는 그 순간까지, 16일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한일전은 벌써 며칠이 지난 지금 되돌아봐도 짜릿함을 안겨 준다. 일본의 심장 도쿄 한복판에서 상대 자책골을 포함해 4골이나 퍼부으며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역사적인 경기였다.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 되는’ 일본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이다’ 승리를 거뒀으니 이만하면 축구팬들은 물론이고 평소 축구를 잘 보지 않는 국민들까지도 잔칫날인 양 신바람이 날 만하다.
하지만 한일전의 승리는 찻잔 속 태풍처럼 조용하게 지나갔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축구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이나, 적어도 A매치 일정을 챙겨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한일전이 열렸는지도 모르는 이가 태반이었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A매치 경기 날만 되면 식당가와 술집에 즐비하게 내걸렸던 ‘축구 경기 중계합니다’ 간판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전국민적 이벤트 ‘한일전’조차 이렇게 무관심 속에 매몰됐다.
아예 몰랐던 사람들이 그나마 나을 수도 있다. 한일전이 열린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중계 채널을 찾아 헤매느라 킥오프 전부터 진이 빠졌다. 공중파 3개 사가 중계에 나서지 않은 탓에 케이블 TV SPOTV가 동아시안컵 중계를 맡았다. 어쩔 수 없이 중계 접근성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결국 TV 중계 채널을 찾지 못해 경기를 보지 못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16일 한일전 중계 시청률 집계 결과 SPOTV는 1.9%, SPOTV+는 1.6%에 그쳤다. 두 채널을 모두 더해도 3.5%. 종합시청률 73.3%라는 역대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던 2002 한일월드컵 공동개최 기념 한일 친선축구 2차전이나, 70.5%를 기록했던 1996 애틀랜타올림픽 최종예선 결승 때 같은 시청률은 아니더라도 ‘흥행 보증수표’인 한일전 시청률로 보기엔 초라한 수치다.
한일전은 언제나 최소 20~30%의 시청률을 보장하는 ‘꿀템(꿀+아이템)’이었다. KBS 2TV와 SBS가 공동으로 생중계했던 2012 런던올림픽 3·4위전 한일전의 경우 각각 15.3%와 17.7%로 전국 기준 33.0%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단순 수치상 5000만 인구에서 최소 1650만 명 이상이 한일전을 지켜봤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한일전이라도 동아시안컵에선 그 위엄이 무색해진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세계적인 국제 대회에 비해 관심이 떨어진다. 공중파 중계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번 대회도 월드컵 대목을 앞두고 있지만 KBS, MBC, SBS 공중파 3개 사는 동아시안컵 중계에 난색을 표했다. 이 때문에 대회 개막 보름 전까지도 중계 방송사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일전 결과를 알리는 축구 기사 아래에 달린 댓글이 이 상황을 정확히 설명한다. “한일전 한다는 소리에 TV를 틀었는데 축구를 안 하더라, 어디서 볼 수 있냐”는 댓글이 태반이다. 일단 케이블 채널의 특수성 때문에 TV로 방송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포털 서비스와 중계 연동이 되지 않아 PC나 모바일에서 중계를 보려면 해당 방송사의 유료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이 뒤따랐다. 경기 날만 되면 ‘동아시안컵 중계’ ‘한일전 중계’ ‘동아시안컵 경기 주소’ 등의 검색어들이 포털 사이트를 뒤덮었다. 축구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불편함 속에서 한일전은 그렇게 ‘그들만의 리그’처럼 끝난 셈이다.
수익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방송사 입장에서 동아시안컵은 분명 매력적인 대회라고 하긴 어렵다. 축구라는 콘텐트 자체 매력이 예전에 비해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 끄는 손흥민(25·토트넘) 기성용(28·스완지 시티) 등 유럽파 스타들도 나오지 않았다. 맞붙은 상대도 축구 강국인 유럽이나 북중미, 남미 팀들이 아닌 동북아 3개 팀이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중계를 강행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셈이다. 이번 한일전의 시청률 3.5%라는 숫자는 그렇게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