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는 1999년에 발족했다. 이후 '비활동기간 준수'는 매년 선수협이 빼놓지 않고 강조해 온 과제였다. 겨울이 오면 "선수협이 비활동기간을 준수하기로 결의했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그러나 진짜 그 결의가 '엄격하게' 지켜진 것은 불과 2년 전부터다.
비활동기간은 말 그대로 선수들이 '선수 활동'을 하지 않는 기간이다. 프로야구규약에 정해진 비활동기간은 12월과 1월, 정확하게 두 달이다. 야구규약에는 '선수의 참가 활동 보수 대상 기간은 매년 2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10개월간으로 하고, 연봉은 10회로 분할 지불한다'고 명시돼 있다. 12월과 1월은 선수들이 월급을 받지 않고 야구도 하지 않는 달이라는 의미다.
이 조항은 오래전부터 팀과 선수의 '성적'을 앞세우는 논리에 희생돼 왔다. 프로는 성적이 곧 몸값이고, 성적을 올리려면 훈련의 양과 질이 중요하다. 이런 직업적 특성은 구단들이 스프링캠프 출국일을 앞당기고 캠프 기간을 늘리는 데 필요한 방패막이가 됐다. 실제로 비활동기간 규제가 유명무실한 틈을 타 슬금슬금 훈련 시작일을 앞당기는 구단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대 후반, 김성근 전 감독이 이끌던 SK였다. SK는 2007년과 2008년 한국시리즈를 2연패했지만, 이듬해 훈련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일부 베테랑 선수들과 재활 선수들을 1월 2일에 일찌감치 일본으로 보냈다. 본진도 나흘 뒤인 6일에 합류했다. 새해가 밝자마자 훈련을 떠난 선수들은 두 달이 지난 3월 5일에야 귀국했다.
'디펜딩 챔피언'이 가장 훈련을 많이 하니, 다른 팀들도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해 삼성과 KIA가 단체 훈련을 시작한 날은 1월 5일이다. 한화는 8일, 넥센은 9일에 각각 첫 훈련을 소집했다. LG도 8일부터 훈련을 시작한 뒤 15일 해외 캠프를 떠났고, 두산은 11일에 출국했다.
당연히 선수들의 불만은 높아만 갔다. 결국 선수협은 그해 11월 비활동기간 훈련 벌금을 개인 100만원에서 상조회 5000만원으로 크게 올렸다. 각 구단에 부과되는 비활동기간 팀 훈련 금지 위반 벌금도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늘렸다. 그 후 거의 전 구단이 스프링캠프를 1월 15일에 떠나는 게 관례가 됐다. 비활동기간은 1월 말일까지지만, 팀 훈련은 1월 14일까지만 금지돼 있어서다. 매년 1월 15일이면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 각 구단 선수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북적거리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비행기 표를 구하기가 어려워 아예 16일로 출발을 늦추는 구단도 나왔다.
4년 뒤인 2013년 12월에는 재활 선수와 군 제대 선수, 신인 선수, 신생 구단에 한해 존재하던 예외 규정도 없어지거나 축소됐다. 실행위원회 합의에 따라 구단 트레이너를 동반한 해외 재활 캠프까지 모두 불가능해졌다. 이 예외 규정을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였다. 2014년 12월엔 비활동기간 위반 제재를 둘러싼 논의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화에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다. 김 감독은 평소 스타일대로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팀 체질을 개선하려고 했다. 1군 선수가 대거 포함된 대규모 선수단을 이끌고 11월 일본 마무리캠프를 떠났고, 12월까지 캠프를 연장하려고 시도했다. 선수들이 반발했고, 선수협도 들고일어났다.
결국 한화는 선수협의 반대에 부딪혀 12월 훈련을 강행하지 못했다. 11월을 꽉 채운 11월 30일 캠프를 마치고 귀국했다. 이후 비활동기간을 지켜 내려는 선수협의 결의는 더 단단해졌다. 급기야 2016년 말부터는 '2월에 시작하는 스프링캠프'도 성사시켰다. 캠프 시작은 예외 없이 2월 1일로 하고, 12월에는 아예 야구장을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1월에도 코치나 트레이너 개입 없이 철저하게 '개인 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구단이 나오면, 각 구단 초상권 수입에서 벌금을 제하게 된다.
물론 현장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144경기 체제에서 갑작스러운 변화까지 생겨 선수들 몸 관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나치게 꽉 막힌 규제 탓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12월에는 야구장 시설도 사용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가장 문제였다. 연봉을 많이 받는 선수들은 해외에 따로 캠프를 차리거나 개인 훈련을 충실하게 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지만, 그 반대인 선수들은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하거나 훈련장을 사용하는 금액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선수협과 협약한 전국 스포츠센터나 재활센터도 프로 선수들이 사용하기에는 시설이 미흡했다. 이 때문에 일부 선수들은 오히려 "12월에도 야구장에 나가 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선수협도 이 부분에 있어선 한 발 물러났다. '코치의 지도를 받지 않는 선에서' 야구장 시설 사용을 허가했다. 선수들 역시 첫해와 달리 새로운 패턴에 적응해 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저연봉 선수들을 위한 정책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야구계의 '빈익빈 부익부'가 만들어 낸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