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이요? 못 나가서 너무너무 아쉽죠. 그래도 대신 평창 나가는 언니 오빠들, 많이 많이 응원해주려고요."
올림픽은 누구에게나 꿈의 무대지만,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둔 한국 선수들의 마음은 유독 각별하다. '한국에서 열리는 최초의 겨울올림픽', 이 한 마디에 모든 겨울 종목 선수들이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을 갈망하는 이유가 담겨있다. '피겨 신동'으로 불리는 유영(14·과천중) 역시 마찬가지다.
유영은 지난 7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끝난 제72회 피겨 종합선수권대회(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에서 총점 204.68점을 얻어 우승을 차지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겸해 치러진 이번 대회에서 쟁쟁한 언니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해 기쁨은 더욱 컸다. 국내 여자 싱글 선수 중 김연아(28) 이후 최초로 총점 200점을 돌파하는 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이토록 빛나는 기록에도 불구하고, 유영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무대에 설 수 없다.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종목엔 나이 제한(올림픽 직전 7월 기준 만 15세)이 있기 때문이다.
규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이미 알고 있었던 결과지만 선수 본인에겐 아쉬움이 클 법했다. 그러나 11일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 만난 유영의 표정은 밝았다. 연이은 대회 출전으로 바닥났던 체력을 잠으로 채웠다는 유영은 평창 얘기가 나오자 배시시 웃었다. "평창 못 나가서 너무 너무 아쉽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첫 겨울올림픽이라 나가고 싶었는데 못 나가서 아쉽다"고 말한 유영은 "대신 평창에 나가는 언니 오빠들 응원을 많이 많이 해줄 것"이라며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평창 출전권과 별개로 이번 종합선수권대회는 유영에게 의미 깊은 결과를 남겼다. 김연아 이후 첫 200점 돌파라는 대기록이다. 유영은 "점수가 200점 넘게 나와서 무척 놀랐다. 만족스럽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잘 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김)연아 언니 외엔 이제껏 200점을 넘은 선수가 없었는데, 내가 넘었다는 걸 안 순간 믿기지 않았고 정말 좋았다"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마침 김연아가 대회 시상자로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유영의 감회는 더욱 남달랐다.
유영은 김연아가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아 피겨를 시작한 '김연아 키즈'의 대표 주자다. 싱가포르에 살던 유영은 TV로 김연아의 연기를 지켜보곤 감동을 받아 당장 다음날 링크로 달려갔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피겨를 배우다 2013년 어머니 이숙희(48) 씨와 귀국해 본격적으로 훈련에 나섰다. "딱 2년만 해보고 안되면 돌아가자"고 못박고 들어온 한국 생활이었다. 그러나 유영은 그를 지도했던 선생님의 말처럼 '스폰지 같은' 아이였고, 무엇을 배우든 족족 흡수해나가며 약 1년 반 만인 2015년, 전 종목 최연소(만 10세 7개월) 국가대표가 됐다.
동경하던 '연아 언니'를 보고 피겨를 시작해 국내 정상의 위치에 오른 만큼, 유영은 '성덕(성공한 덕후)'의 반열에 들 만하다. 유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연아 언니인데, 표현력이나 스케이팅 스킬 등 여러 면에서 많이 가르쳐주셔서 항상 기쁘고 감사하다"며 뿌듯한 미소를 보였다. 김연아의 2009~2010시즌 올림픽 프로그램인 '007 메들리(쇼트)'와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프리)'를 가장 좋아한다는 유영은 "다음 베이징까지 더 열심히 해서 연아 언니처럼 점프도 잘 뛰는 선수가 되겠다. 힘내서 베이징 겨울올림픽 때 클린하고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부터 캐나다 토론토의 크리켓 스케이팅&컬링 클럽에서 훈련을 시작하게 된 것도 '연아 언니'의 영향이다. 김연아가 현역 시절 훈련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유영은 "처음에는 적응도 안되고, 엄마랑 둘이 있어 외로웠는데 계속 있다보니 링크도 좋고 선생님들도 잘 가르쳐주셔서 좋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먼 캐나다 땅에서 훈련하는 건 14세 소녀에게 쉽지 않은 일. 유영은 "(훈련할 땐)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은데 전화나 메신저로 얘기 나누고, 방탄소년단이나 트와이스 무대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며 "뷰티 유튜버들 동영상도 많이 보는데 레나 언니, 이사배 언니 동영상을 보며 대회 때 화장에 참고하고 있다"고 자신의 취미생활을 귀띔했다.
캐나다에서 유영의 외로움을 달래줬던 또 하나의 취미는 중국어 공부였다. 한국에선 각종 대회 스케쥴로 좀처럼 공부할 틈이 없었지만 캐나다에선 비는 시간을 활용해 짬짬이 중국어를 배웠다. 평창이 끝나고 4년 뒤에 찾아올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위해서다. 베이징 겨울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유영은 시상대에서 중국어로 유창하게 인터뷰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유영은 "아직 대화할 정도는 아니지만 더 공부해서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선 중국어로 인터뷰하고 싶다"며 "베이징에서 후회 없는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최선을 다하겠다. 우선 눈앞의 주니어 세계선수권부터 클린 연기를 목표로 열심히 할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