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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662. 한반도의 두 기운
얼마 전까지 부산항에 미국의 항공모함이 차례로 정박 중이었다. 길이 333m, 축구장 3개 규모의 갑판에 각종 항공기 70여 대를 실은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에는 참수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 요원까지 탑승해 있었다. 다음 달 초에는 칼빈슨함이 한반도 근해로 올 예정이다.
평창겨울올림픽 기간 중 군사훈련을 중단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항공모함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유사시에는 군인만 타면 부산항에 정박하지 않고도 해안가에서 직접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말이다.
멀리 두만강·압록강 및 북한의 국경 지대에는 대단위 중국 부대가 기동연습을 하고 있다. 주로 군사작전상 이동이 야간에 이뤄져 왔던 것과 크게 대조된다. 이는 향후 벌어질 수 있는 시가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로 추측하고 있다. 산둥반도에서 시행되고 있는 육전대의 도하훈련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이 평창겨울올림픽 참가와 군사 당국 회담 개최, 남북 선언 존중 등에 합의했다. 북한이 핵 문제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남북 첫 고위급 회담을 계기로 남북대화의 흐름이 새해부터 복원됐지만 북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북의 관계 개선은 자칫 단발성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한반도는 현재 전쟁과 평화의 두 가지 기운이 함께 흐르고 있다.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은 여전히 한반도에서 전쟁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그것을 대비하고 있다. 오직 우리만이 평창겨울올림픽에 빠져 있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평창겨울올림픽에 선수단과 함께 기자단을 파견하면 안전협정위반으로 이의를 제기할 뜻을 시사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 가족을 포함한 고위 대표단을 평창에 파견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은 위안부 후속 대책에 반발해 아베 총리의 평창겨울올림픽 불참을 거론하고 있고, 남북회담이 국제사회의 공조 균열 노림수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렇듯 주변국들은 유사시를 대비하면서도 남북의 판문점 고위급 회담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 명종 때 예언가 남사고는 ‘격암유록’을 남겼다. 이 책에는 임진왜란, 동학농민운동, 한일병합조약, 한반도의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 4·19 혁명과 5·16 군사정권 등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들과 함께 향후 발생할 수도 있는 전쟁과 전염병 등도 경고하고 있다. 이는 동시대 서양 예언가인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도 일맥상통한다.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이 전쟁 불감증에 걸려 있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주말이면 인천공항은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무술년 새해에 평화의 소식이 들려와 좋기는 하지만 마냥 들떠 있어서는 안 된다. 평창겨울올림픽도 중요하지만 대비할 것은 대비해야 한다.
행운과 불행은 같이 온다고 했다. 축제와 전운이 함께하고 있는 한반도를 우리는 냉정히 바라봐야 한다. 북 핵 문제 외에도 안으로 집값 폭등, 최저임금 책정으로 인한 실직 등 우리가 풀어 나가야 할 숙제들이 너무 많다. 정치인은 경제적·사회적 갈등을 유발하지 말고 국민은 차분하게 세계인의 축제를 맞이해야 한다. 때가 때인 만큼 모든 일에 조심해야 하지만 남북이 마주앉아 대화하는 그 자체로 긍정적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